10년의 새벽 루틴, 죄책감을 털고 '성장하는 엄마'를 보여주기까지
새벽 루틴을 10년 동안 지속하려면, 가족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다.
밤 10시에 자려면 남편의 이해가 필요하고,
새벽에 조용히 활동하려면 가족을 깨우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고,
주말 아침 시간을 확보하려면 가족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왜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한지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나도 성장하고 싶어."
"나를 돌봐야 너희를 더 잘 돌볼 수 있어."
이 말을 하는 게 처음엔 어색했다. 엄마니까, 이런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를 돌보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족도 이해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가족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정반대의 시간을 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늦은 시간을 보낸다.
그게 우리 가족이 찾은 우리만의 균형이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둘째가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엄마는 나보다 책이 더 좋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있는데, 둘째가 일찍 깨어 나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만 기다려, 엄마 이 장만 읽고" 하고 말했고, 둘째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책을 덮고 둘째를 안았다.
"아니야. 엄마는 당연히 우리 아들이 더 좋아. 책보다 백만 배는 더 좋아."
"그럼 왜 맨날 책만 봐?"
"엄마가 책을 읽는 건, 우리 아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야.
그리고 엄마도 공부를 해야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거든."
둘째는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진짜? 나보다 책이 더 좋은 거 아니야?"
"진짜야. 엄마한테 제일 소중한 건 너희들이야."
주말 아침, 운동복을 입고 나가려는데 또 둘째가 막아섰다.
"엄마, 오늘도 운동 가? 집에 있자."
잠깐의 도발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집에 있기를 원했고, 나는 운동을 가고 싶었다.
"엄마 1시간만 다녀올게. 그리고 오면서 네가 좋아하는 빵 사다 줄게."
"주헌이가 좋아하는 바게뜨?"
"응, 바게뜨랑 초코소라."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게 나는 운동을 다녀오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사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점차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엄마 오늘 운동 가지? 빵 사올 거지?"
이제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주말 아침에 운동 가는 사람.
그리고 돌아올 때 맛있는 빵을 사 오는 사람.
10년이 지나면서, 아이들에게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아이들은 새벽에 깨어도 엄마가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처음엔 신기해했고, 때로는 투정을 부렸지만, 점차 그게 우리 집의 일상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읽지는 않는다.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새벽에 깨면 책을 읽는 거구나.'
'엄마는 주말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이구나.'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책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소파에 기대어 책장을 넘기셨는데,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저렇게 매번 읽는 걸까.
그 작은 궁금증은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내가 어떤 고민에 빠졌을 때 조용히 나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엄마의 책 읽는 모습이 그렇게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엄마도 힘들 때 책에서 답을 찾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당장은 책에 흥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보는 이 풍경은, 말없이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고민을 안게 되는 날,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책으로 손을 이끌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에밀 쿠에는 말했다.
무의식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매일 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되뇌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다.
하지만 매일 새벽, 책을 펼치는 엄마의 모습이 그 주문 대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이 아니라 장면으로, 반복되는 일상으로 아이들의 무의식에 새겨지는 것.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새벽6시쯤 깨버린 첫쨰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https://blog.naver.com/twinkle0904/222849115953
남편과 나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남편은 저녁 늦게까지 깨어 있고 아침잠이 많다.
나는 밤 10시면 잠들고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난다.
그래서 내가 잘 때 남편은 놀고, 남편이 잘 때 내가 깨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를 거의 반대로 산다.
처음엔 걱정했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은 거 아닐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야식과 함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남편과 늦게까지 논다.
치킨에 맥주, 혹은 라면에 떡볶이.
그렇게 밤 12시, 1시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매일을 붙어있는 것보다
우리 부부에게는 평소엔 각자의 시간,
그리고 일주일 한 두번, 함께하는 시간의 균형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내가 새벽 루틴을 지속하자 가족도 조금씩 변했다.
남편은 내가 새벽에 운동하는 걸 보고, 헬스장을 등록하기도 했다.
사실 거의 안간다. ㅎㅎ 그래도 시작한게 어디인가 싶다.
아이들은 숙제를 못했을때, 자연스럽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한다.
엄마랑 같이 할 수 있으니까.
강요한 적은 없었다.
그저 엄마가 매일 새벽에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함께 성장했다.
남편은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게 되었고,
첫째는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새벽 6시쯤 일찍 깬 아이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둘째는 주말 산책을 통해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벽마다 나를 만나면서,
더 나은 엄마, 더 나은 아내, 더 나은 나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이제 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에 대한 답을.
"엄마는 왜 맨날 운동복 입고 있어?"에 대한 이유를.
"엄마는 왜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에 대한 의미를.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도 자라서 자신만의 '새벽'을 찾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 속에 심어진 씨앗이, 언젠가 싹을 틔울 것이다.
당신의 가족은 엄마 혹은 아빠만의 시간을 이해하나요?
아직 설명하지 못했다면, 오늘 용기 내어 이야기해보세요.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그리고 작은 문화를 만들어보세요.
운동 다녀오면서 빵을 사 오는 것처럼.
각자의 시간과 함께하는 시간 사이에서 우리만의 균형을 찾는 것처럼.
10년간 새벽마다 읽은 책들,
그 기록은 '새록초록 새벽서재' 블로그에 하나하나 남겨두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혼자 시작하기 어렵다면, 새벽독서 모임과 함께해보세요. 함께 읽으면 더 즐겁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주에는 '실천 - 새벽 4시 20분의 실전 루틴'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10년간 새벽을 지키며 느낀 구체적인 변화들을요.
매주 화요일 오전 7시,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새벽 4시 20분, 10년의 기록>은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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