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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경 Dec 24. 2022

우리 삶이 공허하고 피폐해지는 이유

모모 - 미하엘 엔데

모모-미하엘 엔데

오랜만에 보는 회사 후배와 간만에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육아와 업무에 지친 그녀가 밥을먹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는 요즘 육아와 회사일만으로도 매일이 눈코뜰새 없이 바쁜데도, 무언가 빠진 것처럼 무기력하고 공허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격증 이라도 따야할까봐요~?” 라고 이야기 합니다. 맞벌이로 어린 딸을 키우며 회사일 하랴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는 그녀이지만 매일 계속되는 무기력함에 자격증 공부까지 추가하려고 하는 것이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모든게 허무하고,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감정이 바로 ‘공허함’ 이라는 감정인데요. 공허함이 느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자기계발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공허함을 느낌과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은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직장이 요구하는 스펙을 하나씩 쌓아나는 성취감으로 풀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나면 괜찮아질까요?

어느 순간 우리에게 스멀스멀 파고드는 이 공허함이라는 감정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근원적인 해결 방법이 있긴 할까요? 저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모모는 사람들의 말에 귀 귀울일줄 아는 사랑스런 아이 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회색 신사들이(산업화/자본주의) 마을에 찾아와요. 그들은 우리 인간의 어떤 중요한 본성인 ‘욕망’을 자극하는데요. 바로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인 인정 욕구를 자극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며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사람들로 변해가게 됩니다. 그렇게 더 이상 자신의 목표나 성취의 대상이 아닌 것들에 시간을 쓰지 않고, 성과와(유용/이익) 관련없는 의미있고 가치없는 것들을 외면하기 시작해요. 그렇게 시간을 아껴가며 성취를 위한 삶을 살지만, 시간을 절약하면 할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해야 하기에 더욱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은 삶 자체의 풍성한 가치와 의미가 빠진, 유용한지 아닌지의 판단에 따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일의 보람을 상실하고 삭막하고 피폐해져만 가죠.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팍팍한 인생과 이어집니다.



"인간성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강열한 갈망은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다." -존 듀이



회색 신사들의 영향력

회색신사는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무언가를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존재들입니다. 모든 것들을 유용한 것(or 이익)인지 아닌 지로 판단됩니다. 그들의 영향력 아래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며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가게 되는 것이죠.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하고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에 더 많이 쓸 수 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를 찾을 수 없었고 그들은 심지어 여가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거리를 찾구요. 우리의 현실과 아주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자기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을 질투한다. -p48 <에피쿠로스의 네가지 처방>



그 옛날 에피쿠로스가 말했듯 부와 성공에 만족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자기보다 더 성공한 사람과 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자기 자신을 열심히 소모하며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성취할 목표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모시키기 전에 그 현실을 빨리 깨닫고 나의 시간,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을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모에는 ‘시간의 꽃’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요. 이 시간의 꽃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요. 회색 신사들 손에 들어간 꽃은 불에 타서 소모되며 그들을 더욱 불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었을 때 시간의 꽃이 피어나면, 그 시간은 향기를 발산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유용한지 아닌지의 잣대가 아닌 나에게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시간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게 의미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향기와도 같은 감동을 발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일테구요.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 - 모모中


의미가 가득한 시간 채우기

회색 신사들의 방문 이후, 인정받는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고 돈에 집착하며 점차 예전의 따스함을 잃고 차갑고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그들을 위해 싸워요. 그렇게 모모는 호라 박사의 도움으로 친구들에게서 회색신사들을 떼어낼 수 있게 됩니다. 회색신사들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진정으로 의미있는 시간에 집중하며 순간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이것저것 해야할 일 혹은 업무 등으로 다이어리를 꽉꽉 채우잖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의미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봉사하기, 부모님 챙기기 등은 보통 빈 시간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쓰고 있는 시간을 우선순위 업무 중심이 아닌, 나의 시간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만이 우리의 공허함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공허함을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메운다면, 잠깐 동안의 성취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또다시 공허함에 빠져들고 또 다른 성취감을 찾아 헤메이며 삶은 더욱 피폐해지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P98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 없아.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P329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 이 말은 바로 내가 진짜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의미 합니다. 사회에서 원하는 스펙을 추가하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나에게 의미있는 일을 찾아야 해요. 그것을 할 때 시간이 풍성해지고 감동이 생겨나는 거에요.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의 저자인 한병철은 이것이 사색을 통해 가능해 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대상을 조작하고 바꾸어버리려는 협소한 욕망을 잊어버리고 그 순간 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가만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라고 라는 것이죠. 모모는 경청을 잘하는 아이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모를 찾아와 이야기를 했고, 모모가 잘 경청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고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하소연, 모모의 경청이 바로 나 자신과의 대화이며, 사색적 삶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P24



이제 대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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