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다시 읽기
“안개만 없다면 만 건너로 당신 집이 보였을 텐데.” 개츠비가 말했다. “부두 끝에 늘 밤새 빛나는 초록 불빛이 있더군요.”
‘위대한 개츠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 보다는 영화로 먼저 접했을 것 같은 작품인데요. 영화가 너무 강렬해서 그랬는지, 제목만 들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먼저 생각나거든요. 영화는 좋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이렇게 까지 유명할 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남는 건 디카프리오가 정말 잘 생겼다는 것, 정도였거든요. ^^;;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영하 작가가 입을 모아 높이 평가한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이 작품의 번역까지 직접 맡아서 할 정도인데요. 역시 특별할 거 없어 보였던 영화가 책으로 접하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내용인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은 어떻게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이 될 수 있었을까요? 한번 제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주인공이자 이 작품의 서술자인 닉 캐러웨이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 피츠 제럴드는 닉을 화자로 선택했을까요? 닉은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츠비에 대해 막연하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신이 경멸하는 평범한 갑부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점차 닉은 개츠비에게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작품 속에서 닉은 개츠비의 순수한 열정과 특별한 감수성을 이해하는, 그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닉은 증권업을 배우기 위해 먼 친척인 데이지와 대학 동창 톰 부부가 사는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그는 톰 부부와 저녁을 먹으러 그들의 집에 방문하고, 그곳에서 골프로 많은 재산을 쌓고 훗날 그와 썸을 타게 되는 조던 베이커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함께 이야기하던 중 닉의 이웃, 엄청난 갑부로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닉은 호기심이 생기죠.
그런데 개츠비 파티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닉과 조던이 그의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그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는데요, 그의 파티의 목적은 바로 그의 사촌 데이지였습니다. 부자집에서 풍족하게 태어나 타고난 매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자란 데이지는 개츠비의 첫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고, 그녀는 조건 좋은 남자 톰과 결혼했던 것이죠. 하지만 개츠비는 그녀를 잊을 수 없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를 잡기 위해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것이었죠. 그런데!! 가난했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1920년대 미국은 자본주의가 절정으로 치닫으며 넘치는 부로 인해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였는데요. 1925년에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대공황(1929) 직전에 쓰여진 만큼, 당시 거품이 양산되고,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가 치솟으며 벼락부자들이 양산되고 있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었죠. 신흥부자들은 석유와 도박, 주식 투기, 밀주 등으로 돈을 벌게 됩니다. 1920년대는 대공황 직전까지 금주법의 시대였지만, 작품 속에서 개츠비 역시 밀주 사업을 벌이며 불법적인 부를 축적한 것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이해하면 개츠비가 어떻게 갑자기 신흥 벼락 부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개츠비는 결국 목적을 이룹니다. 파티에 초대된 닉의 소개로 데이지와 재회를 하게 되는데, 데이지는 남편 톰의 무지막지한 성격과 뻔뻔한 공식적인 외도에 지쳐있는 상태였고, 막대한 부를 장착하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개츠비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지는 개츠비를 점심식사에 초대하고, 닉을 포함한 5명이 데이지의 집에 모입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친 그들은 함께 시내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함께 하던 중 톰은 개츠비가 데이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그 동안 뒷조사를 통해 알게된 개츠비의 정체를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폭로해 버리죠. 개츠비가 불법적인 사업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 사실 그는 밀주업자라는 것을 말이죠. 개츠비의 정체에 겁을 먹은 데이지. 그 사실은 그 즉시 그녀에게 개츠비를 향한 태도가 돌변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각각 인물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되는데요. 데이지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신의 부와 안락함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성격으로, 조건이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진정성이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톰 역시 같은 부류죠. 그는 유부남이지만 공식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는 인물로 아내의 전 연인이 나타나자 불안해하는 대표적인 위선자 캐릭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던 역시 초반부터 서서히 닉의 썸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사소한 오해로 너무 쉽게 다른 남자와 약혼해 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듯 작품 속의 대다수의 인물들은 진심이 없는 통속적인 존재들로, 그 안에서 갈등하고 부딪히는 전형적인 보통의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물들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순수함으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개츠비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향과도 같은 데이지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변치 않았고, 그녀만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헌신하는 유일한 존재였죠. 그러한 면에서, 개츠비는 정말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과 위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순수한 가치를 지켜내었으니 말이죠.
바로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개츠비의 꿈에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데이지의 잘못이라기보다 개츠비가 품은 엄청난 환상 때문이다. 그의 환상은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능가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그 환상에 직접 뛰어들어, 언제나 그 환상을 끊임없이 키워 가며, 자기 앞에 떠도는 빛나는 낱낱의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강한 열정이나 순수함도 인간이 유령 같은 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것에는 맞설 수가 없다. -P131
호텔에 있던 개츠비와 데이지는 톰의 차를 타고 먼저 집으로 향했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데이지였습니다. 그녀는 운전 중 사람을 치는 사고를 냈고, 당황한 나머지 도망가 버리죠. 차사고를 당한 사람은 톰의 정부 머틀이었고,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그녀는 톰의 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뛰어들었던 것이죠. 개츠비는 끝까지 데이지를 위해 그녀의 죄까지 뒤집어쓸 각오로 그녀를 걱정하고 감싸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 그들을 뒤따라오면서 사고를 목격한 톰, 실의에 빠져있는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이 개츠비라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 말을 굳게 믿은 윌슨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개츠비의 집에 난입해 수영장에 있던 개츠비에게 총을 발사하고 말죠.
개츠비는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요. 개츠비의 정체가 폭로된 이후 태도가 돌변한 데이지는 그의 죽음에 꽃 한송이조차 보내지 않는 냉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닉은 개츠비의 진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를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끝까지 그의 지인들을 찾아 장례식에 참석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아버지 개츠씨 등 두 세사람만이 참석한 채 쓸쓸하게 치뤄집니다.
개츠비는 가난했지만 꿈과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사랑이라는 명확한 꿈 하나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물불 안가리는 온갖 희생을 감수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럴수록 개츠비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데이지라는 목표에 집착하면 할수록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는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자신까지 파멸하는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그 당시 미국 사회는 ‘부= 행복’이라는 공식에 맞춰, 누구나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만연해 있었는데요. 그렇게 그 당시 성공만이 강조되며 그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1920년대의 자본주의 미국 사회의 민낱을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현재 역시 개츠비가 그랬듯 자신만의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이잖아요. 하지만 자신만의 순수한 꿈과 이상은 삶의 목적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가 지켜내야만 하는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그 방향만 바로 선다면 말이죠. 비록 작품 속 개츠비는 자신이 파멸되는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 빛나는 존재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는 남들에게 없는 초록색 불빛과도 같은 위대한 가치 하나는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죠.
나는 그곳에 앉아 그 오래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개츠비가 데이지의 선착장 끝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경이로움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까지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너무나 가까이, 틀림없이 그가 지나온 곳은 도시 너머의 광막한 어둠 속 어딘가, 밤하늘 아래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들이 펼쳐진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개츠비는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환희의 미래를 믿었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