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이야기
시험은 3일에 걸쳐서 봤었다. 그리고 둘째날에는 수학 그리고 한국사를 봤었는데, 수학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서술형을 모두 맞는 쾌거를 이루었고, 한국사는 시대 배열 문제에서 하나 틀리고 나머진 다 맞았다. 그리고 그 날은 무엇보다 웃겼던 점이 있는데, 나랑 같은 방을 쓰던 같이 있으면 재밌다는 친구가 기숙사 자습 시간에 한국사를 채점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 친구는 역사 시험 범위는 조선 후기 까지 임에도, 신석기 시대 까지만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그 녀석은 한국사 시험 전날에 몬스터를 마시며 밤을 새워가며 밤샘 공부를 지속했다. 그 친구는 한국사 전날 시험 과목이던 통합과학도 공부를 안했어서, 통합과학 시험 전날에 밤샘을 하여 객관식에서 하나만 틀리고 모두 맞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친구는 역사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이번 통합과학은 이해와 원리보다는 암기성이 짙은 내용들이 태반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임)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역사는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노력한다면 하루안에 잡는 것이 어려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려면, 특히 내신 시험인 만큼 지엽적인 내용이 상당 부분 출제가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60페이지 정도가 되는 시험 범위를 글씨 한톨도 잊지 않고 한번씩은 보고 익혀야 만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절대 하루만에 완성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와 밤샘을 하려던 그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그 친구에게 "평소에 공부를 좀 했어야지"등등의 핀잔을 주었고 그 친구는 90점 이상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험을 보고 기숙사에서 채점을 시작하는데..... 첫장에서만 3개를 틀렸다. 그 친구는 고려와 조선시대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다가 그 앞부분인 삼국시대 내용을 소홀히 해버렸던 것이다. 기숙사에서 그 3개의 직선이 그려졌을 때 그 친구와 나는 자습시간에 빵 터져버려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친구랑 있으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웃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래서 3개를 그은 후에도 너무 웃겨서 계속 웃었는데, 너무 웃었는지 그 친구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는데 그 표정마저도 나에게 있어서는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었기에 더 터져버렸다. 사감 선생님께 걸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날은 국어 1과목만 봤는데, 국어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며 밤샘을 하지 않고 그냥 잤다. 그렇게 시험 기간의 둘째날이 지나갔다. 이 맛에 기숙사에서 산다고 자부할 정도로 난 이 날이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날도 벌써 과거로 남겨졌다. 오늘은 시험이 끝난지 하루가 지나 벌써 밤이 찾아왔다. 아마 난 이 글을 마지막으로 4월 26일 금요일의 하루를 마무리하면 잠에 들 예정일 것 같다. 난 학업이 그닥 부질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시험 점수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됐는데, 시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불교적 표현으로 해탈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 정도가 되어서 자신의 시험 점수에 관대해지는, 그것을 넘어서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고 관대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을 듯 하다. 기숙사를 들어가며 시간은 더 빠르게 느껴진 것도 있지만, 시간은 원초부터 빨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한다. 여기서 살짝 나의 꿈을 밝혀볼까? 나의 불과 몇주전 꿈은 수학과 교수가 되어서 수학 그 학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나의 꿈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것도 함께 하고 싶다. 한가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현재의 꿈이 무엇이냐면, 학원 중에는 동네 학원이 동네 학원 중에는 다니면 생활이 행복해지는 그런 학원이 있다. 나는 그러한 학원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동시에 인생을 가르치고, 집에서는 책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인생의 짝도 만나서 나의 행복은 한층 더 올라가는 그런 낭만적인 삶, 지금의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꿈이다. 사실 여기서는 학원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 선생님이어야 표면적으로 더 낭만이 있어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을 다녀본 나로써 인생을 더 배우기 적합했던 곳은, 학교보다는 학원이었다. 학교는 인생을 가르치지고 전에 사람으로 만들어야할 학생이 너무 많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은근히 있다보니 학교 선생이란 직업은 굉장히 스트레스성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명문고는 이런 일이 없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의 말씀 중에 더 중요시 해야할 게 무엇이냐고 하면 당연히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따지는 것이 옳다. 허나 코리안 스튜던트들은 학원 선생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내가 학원을 더 선호하는 이유도 있지만, (물론 학교 교사나 학원 선생이나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에서는 전망이 좋지 않으니 다른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나 고민이긴 하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좀 시골에 살면서 동네 학원을 다녔는데, 그곳을 가는 것이 기대될 정도로 행복했다. 이런 삶 속의 소소한 행복을 창조해나가는 것 또한 학원의 의무적 역할이 아닌, 선택적 역할로서 작용하여 학생들의 행복을 자아내는 기능을 할 수 있는 학원을 만들거나 그런 학원에 강사로서 일을 하여 아이들과 소통하며 책을 쓰는 것이 나의 꿈이다. 책은 에세이 같은 나의 인생 속 깨닮음이나 자서전같은 나의 성공사, 혹은 실패사를 주제로, 또 소설을 써보고 싶다. 로맨스 소설과 추리소설을. 이것이 나의 꿈이다. 소위 말하는 문이과 통합형 인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보면 상반될 수 있는 이 2가지 일을 난 다 하고 싶다. 이 밖에도 내가 하고 싶은 건 많다. 허나 할 수가 없다. 고등학생이란 시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소소한 삶의 행복은 무엇이며,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며, 나의 삶은 어떠하였으며 등등 소위 말하는 자아성찰의 행위를 실천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은 거의 처음인데, 이러한 경험이 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따라 '글'이라는 단어가 내게 행복 스위치 같이 느껴진다. 글을 쓰는 것 읽는 것 가릴 것 없이 다 행복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글을 조금 더 멋있게 쓰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렬한 것 같다. 앞으로는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읽으며 글을 어떻게 써야 멋있는 글이 될지 혼자서 많은 궁리를 하며 지내야 겠다. 사실 이 글도 아직 작가신청도 되지 않아서 저장 상태로 보관된 글이다. 언젠가 작가가 된다면 가장 먼저 공개할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 공모전에도 나가보고 싶다.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 그것이 내 지금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