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발표하라면서요.... 2분안에 어떻게 끝내....
최근에 수행평가를 봤다. 과목은 통합과학이다. 수행평가는 발표였는데, 유전적 다양성, 종 다양성, 생태계 다앙셩, 서식지 파괴, 외래종 유입, 동식물의 남획과 포획, 환경 오염, 그리고 환경 보존을 위한 개인적 노력, 사회적 노력, 국가적 노력,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필요성. 이 모든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다. ppt도 없이.
솔직히 이 내용만 듣는다면 발표해야할 내용이 많기는 해도 불가능 하지는 않다. 시간만 오래 걸릴 뿐이지 발표해야할 내용도 다 쉬운 것들 뿐이며, 어려움도 없다. 근데 하.....
"2분 안에 발표하라네?"
아니 상식적으로 2분 안에 어떻게 저 수많은 내용을 다 발표해버리는가. 지금 순식간에 난이도가 "별이 다섯개!!!"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하지만 괜찮다. 지금까지 모든 발표 수행평가는 몇 분 안에 하라 등의 시간 제한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발표를 도중에 끊는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발표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한은 감점도 없다. 과학 발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어느덧 발표하는 날이 왔다. 발표는 1번부터 이루어졌다. 1번이 나와서 발표를 한다. 목소리가 좀 작고, 자기가 써온 글을 곧이곧대로 읽는다. 보기 안좋다. 그러다 갑자기 발표자 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수고했어요."
이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이런 미친. 2분이 지나서 발표를 끊은 것이었다. 그저 "네, 수고했어요."이 말로.
발표가 도중에 끊기게 된 1번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일반고에서는 반에 구성원이 30명 중에 공부 좀 치는 애들 3~5명. 그저 그런 애들 10~20명. 그리고 공부를 완전히 안하는 애들 3~5명 정도. 이렇게 구성원이 이루어진다.
공부를 하는 애들끼리는 서로의 수행평가, 발표를 유심히 관찰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저 아이는 어떻게 발표를 할 것이고,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난 어떻게 해야할 지를 파악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 반에는 나를 포함한 5명이 딱 그렇다.
이 5명은 계속 얘기했다. 발표를 미치도록 빨리 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모두가 똑같은 말을 했다.
5명 중에서는 내가 제일 뒷번호이다. 따라서 발표는 내가 가장 마지막 순서이기 때문에, 일단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마지막 순서(물론 5명 중에)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앞의 4명의 발표를 유심히 관찰하고 내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내 앞의 4명은
"모두 2분을 넘겼다."
모두 발표하던 중간에 선생님이 끊으셨다. "네, 수고했어요." 이 한마디에 4명이 무너졌다. 나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난 안다. 이 4명이 왜 끊긴 것이며, 뭐가 문제였는지. 물론 발표 도중에 끊긴 것은 2분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문제. 발표라고 한다면 "말하기"를 평가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반의 모두는 "내가 쓴 걸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자신들이 써온 글을 그저 보고 읽는다. 누구는 목소리가 크게, 누구는 작게. 결국에 그들의 시선은 관중을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알 수 밖에 없다. 난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해야한다. 선생님으로 하여금 발표를 끊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준의 발표를, 2분안에 끝내면 됐다.
"끝내기 아까운 '말하기'를, 2분안에 하면 된다."
내 차례가 왔다. 선생님이 언제부터 시간을 카운팅 하는지를 난 알 수 없다. 즉, 시작은 최대한 빨리.
나는 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퐁당당한 걸음으로 교탁으로 향했다. 자기소개는 생략한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교탁에 도착함과 동시에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려치며 시선을 끈다. 바로 말하기 전에 5초 정도 나를 바라보는 눈들과 눈맞춤을 한다. 거기에는 선생님도 포함이다.
눈맞춤을 끝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말하기를 시작해야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유전적 다양성에 대해서 먼저 시작해야한다. 하지만 말을 시작할 때의 가장 안성맞춤인 말이 있지.
"자,"
"자,"로만 시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다. "자, 유전적 다양성이란"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가져온 대본(나는 대본에 발표할 내용만 키워드로 정리해놓음)은 절대 봐서는 안된다. 시선은 무조건 정면, 그리고 관중을 향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중들의 몰입도가 깨진다.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내 발표를 듣는 사람들이, 글을 낭동한다가 아니라 '말한다'를 느끼도록 해야한다. 어떻게 하는가? 아주 간단하지. 말하면 된다.
관중들과 끊임없는 아이컨택을 한다. 허나 여기서 끝내면 안된다. 말을 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게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뭡니까? 깨끗한 물, 깨끗한 식량, 깨끗한 공기, 이건 그냥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그, 자체에요 여러분."
깨끗한 물, 깨끗한 식량, 깨끗한 공기. 이 3가지를 나는 나열하듯 말하고 있다. 이럴 때에는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마치 손가락으로 카운팅하듯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접으며, 단어 하나를 말할 때 마다 발바닥으로 땅을 같이 차준다. 그러면 매우 강조되며 사람들의 집중이 깨지지 않는다.
"아니, 땅을 개발하는 건 좋은데, 왜 서식지까지 파괴해뻐리면서 해, 그렇잖아?"
중간에 반말을 섞는 것. 굉장히 공식적인 자리라면 힘들겠지만, 고작 학교 수준의 발표에서는 중간중간 반말을 섞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일깨워주며 웃음을 준다. 즉,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말이 아니라 '톤'이다. 내가 톤을 어떻게 하느냐가 저 문장을 좌우한다.
저 문장을 말할 때의 나는 마치 서식지까지 파괴하면서 땅을 개발하는 것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뉘양스를 가지며 말했다. 이러한 뉘양스와 톤,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저 문장의 '파괴해뻐리면서'는 오타가 아니다. 해버리면서가 아니라 해뻐리면서라고 한 것 또한 변화구를 던진 것이다.
발표가 길어질 수록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주어야하는 것이다. 물론 짧은 발표여서 상관은 없었지만,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때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대중연설이었다. 어차피 발표의 순서는 선생님이 정해주셨다. 유전적 다양성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들어갈 내용은 생물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마치 내가 관중들에게 생물 다양성의 필요성을 납득 시키는 연설을 한다는 이미지를 가지면 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뭡니까? 깨끗한 물, 깨끗한 식량, 깨끗한 공기, 이건 그냥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 그, 자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생물 다양성을 해친다는 건 그냥 우리가 자살해뻐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뭐겠어요, 생물다양성은 필요하다! 이상입니다."
내가 말을 마무리할 때에는 트럼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트럼프가 총에 맞았을 당시, 팔을 머리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 이미지를 살려 '생물다양성은 필요하다!'라는 부분에서 팔을 머리위로 치켜들며 주먹을 불끈쥐며 관중들을 향해 내던진다. 그러면서 발바닥으로 땅을 한번 차며 소리를 크게 한번 내주며 행동의 절제를 보여준다.
그리고 수행평가라는 점을 감안하며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정자세를 취한 후 "이상입니다."를 말하며 멋있게 발표를 끝낸다.
내 발표는 박수를 받았다. 학교 수행평가는 예의상 박수를 치지 않냐고 묻는다면, 이번 수행평가에서 박수를 받았던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선생님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며, 그 분위기에 억눌린 친구들은 덩달아 조용해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고요속에서 혼자 걸어나와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친구들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대중 연설. 내 발표는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말하는 주체가 비록 나일지라도, 관중 모두가 '마치 나도 함께였던 것 같았어.'를 느껴야 한다. 그 점을 감안하며 나는 위같이 발표 하였고, 결국에는 박수를 받았다.
또 발표를 하는 내내 선생님을 포함해 많은 친구들이 웃어으며, 미소를 짓게 하였다.
내가 수업듣는 과학 선생님은 그닥 친근한 이미지도 아니고, 이름 좀 있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마치 박정희같이 과묵한 스타일의 선생님이었다. 내가 발표를 끝내자 그 선생님은 내게 "이야, 발표 잘하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반을 통틀어서 아마 내가 가장 잘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뭐 진짜인지는 선생님만 아실 것이다.
자랑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