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요, 님도 좋아하잖아요.
난 관심 받는 걸 좋아한다. 아 물론 변태는 아니다. 갑자기 바지를 벗어 던지면서 "유후~ 나를 봐줘~!"이런 관심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심이라고 표현할까. 그런 거. 여러분도 알 것이다. 아니 뭐 프로젝트를 하는데 너무나 완벽하게 끝내고 선생님이나 교수님, 아니면 직장 상사한테 칭찬받고 동기들, 친구들이 "너 너무 잘하는데?"의 관심. 이 관심을 난 좋아한다.
저 관심에 대해 정확히 정의는 못하겠지만, 저 정도의 설명이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관심 받는 것이 부끄럽다고? 근데 그러한 사람들은 주로 적절한 관심의 정도를 좋아한다. 결국에는 관심을 좋아한다. 그렇다. 9시 뉴스의 소재 쌉가능인 변태가 아닌 이상은, 모두가 관심을 좋아한다. 나도 좋아하는데요 뭘.
나는 지금 '관심'을 소재로 정하였지만 이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한번 글을 쓰면서 정해볼 생각이다.
내 삶의 원동력은 사실 관심이 아닐까? 게임이나 내 취미인 큐브 맞추기. 이러한 것들은 그냥 내가 한다는 것 만으로도 내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분야에서는 미친듯이 재능이 있지 않은 한 내 사회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부분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가장 쉽게 내 삶을 구축하는 방법은 바로 '공부'이다.
내 스스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공부'를 그리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 학교에서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정확히 몇인지는 절대 안알려줌)
하지만 공부와 게임, 선택지가 이렇게만 주어져도 바로 게임을 선택해버릴 것이 나다. 근데 나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게임하는 시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런 미친, 어떻게 공부하는거야?"
내가 성적이 나름 괜찮은 편이다 보니 가끔 내게 공부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한 질문에 나는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너같이 공부 안하는 사람이 태반이라, 그냥 하기만 해도 '성적'은 올라."
너무나 맞는 말. 그런데 이 질문 외에도 내게 어떻게 공부를 시작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질문에는 나는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공부 잘하면 멋있잖아."
공부를 잘하면 멋있다. 이건 솔직히 맞는 말이다. 공부를 잘하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공부를 남들에 비해 잘한다는 자각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멋있는 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쨌든 공부를 하면 멋있다. 그러니까 결국 "관심"이다.
내 공부의 원동력은 관심인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적어도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나를 올려다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난 희열을 느낀다. 내가 희열을 느끼는 것은 나르시즘같은 변태적인 것이 아니라, 이 글의 서두에 있는 프로젝트의 성공과 같은 이치이다.
그냥 내가 공부를 좀 했더니, 결과가 좋게 나왔고, 결과가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내 노력을 인정해준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공부의 동기는 "관심"이다. 남들이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주기에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남들이 관심을 안준다고 해보자. 내가 아무리 공부에 노력을 해도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으면 누가 공부를 이어서 하고 싶겠는가? 알아채주는 사람이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올려다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또 "관심"이라는 단어에 묶이는 것들 아닌가.
"관심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부정하지마."
내 삶의 원동력은 관심이다. 그래. 난 부정하지 않을게. 관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야.
관심은 내가 공부를 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내 악습관도 고쳐준다. 생각을 해보자. 좀 극단적이지만 내가 여자의 치마를 들추는 습관이 있다고 해보자. 이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 순간 그 주변의 모두가 나를 경멸할 것이며,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게 가르치려 들 것이다.
여기서 희열을 느낀다면 그건 변태고, 똑같은 관심임에도 '이상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기에 나라면 저 상황에서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치마를 들춘다면 모두가 웃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싫어한다. 여기서 느낄 것이 이상함이 아니겠는가? 이 이상함은 결국 나를 악습관을 고치는 길로 인도해준다.
요약하자면 결국에 "삶=관심"이다.
한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