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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맘유하맘 Aug 13. 2020

밭만들기 대작전-2

[유하네 농담農談]

옻나무도 부리는 텃새

유하네는 앞집 할머니가 사시는 집 뒤에 있는 밭도 빌렸습니다. 밭 한 쪽에 방치되어 잘 자라지 못한 대추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캐내 채소밭을 만들었습니다. 작년 가을 좋은 마늘씨를 구해 심었습니다. 지나가시던 마을대장 할아버지가 “마늘잎이 좋네”라며 칭찬을 하십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처음 받은 칭찬이었습니다. 다른 밭처럼 갈아엎지도 않고 비닐을 깔지도 않았지만 유하네의 삽질을 기억하는 듯 마늘싹은 추운 겨울을 견디고 딱딱한 땅을 뚫고 나왔습니다. 마늘이 뿌리로, 잎으로 땅을 뒤집어 주었으니 더욱 부드러운 힘을 가진 멋진 밭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3년째 밭을 만들고 있었는데 앞집 할머니 자녀들이 유하네를 찾아왔습니다. 내년부터는 우리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밭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늙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옆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함께하겠다는 자식들의 착한 마음이었지만 유하네에게는 청천벽력입니다. “어차피 우리 밭도 아니었는데 뭐. 이 기회에 대출을 받아 좋은 밭 하나 사자.” 유하 아빠는 위로의 말과 함께 더 큰 꿈을 꿨지만 소심한 유하 엄마는 “그동안 저 밭 만드느라 고생했는데…”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마늘잎 사이를 걸어봅니다.

앞집 할머니 자식들은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곳곳에 있는 무덤을 벌초하는 대신 빌려 쓰는 밭이었습니다. 할머니가 힘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시면서 마을 다른 분께 밭 임대를 넘겼고 유하네가 이사 오자 “집 앞에 있으니 너희가 벌초하고 농사지어봐”하며 빌려주신 밭입니다. 밭주인이 서울에 살아 내려와 보지는 않지만 유하 아빠는 추석이면 7-8개 되는 무덤을 찾아 벌초를 했습니다. 쑥이며 망초대며 환삼덩굴로 뒤엉켜 있던 밭을 낫으로, 삽으로 정리하며 조금씩 밭을 만들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내놓으라니 많이 속상했습니다. 농림부 통계를 보니 귀농 실패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이웃과의 갈등, 일명 텃새라던데 우리한테도 비슷한 상황이 오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며 땅주인과의 관계, 자신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등등 수십 년간의 역사를 읊으며 유하네의 지난 3년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화가 났습니다. 며칠 전 밭둑에 늙은 호박을 심어보자고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던 옻나무를 베어내고 정리하다 세하에게 옻이 올랐습니다. 아빠를 도와주겠다며 옻나무 가지를 맨손으로 만진 까닭입니다. 아침에 팅팅 부운 세하 얼굴에 약을 발라주다 “옻나무까지 우리한테 텃새야?!”라며 괜히 심술을 부려봅니다.




땀만큼, 딱 그만큼

오늘도 유하네는 밭을 만들기 위해 나섭니다. 오늘은 유하네 집 옆 골짜기 사이에 있는 밭으로 향합니다. 작년 봄 아카시아 나무 밑 그늘이 지는 곳에 곰취를 심었습니다. 그늘을 좋아하는 곰취는 골짜기에 심기 좋은 채소입니다. 반짝거리는 연두색 곰취잎이 예쁘게 나왔습니다. 내년이면 장아찌를 담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햇볕이 들어올 수 있게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내고 감자랑 당근이랑 더덕을 심었습니다. 유하네가 흘린 땀만큼, 딱 그만큼의 밭이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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