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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맘유하맘 Aug 13. 2020

밭만들기 대작전-1

[유하네 농담農談]

밭을 팍팍 삶자!

봄비가 차분히 내립니다. 얕게 묻힌 작디작은 당근씨가 밖으로 나올까, 막 나오기 시작한 감자싹에 상처가 날까, 봄비는 자분자분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습니다. 4월 16일도 지나고 봄 같지 않은 봄이 유하네에게도 찾아옵니다.

유하네 8평 작은 집 앞에는 400평 정도 되는 밭이 있습니다. 문전옥답이라고 하지요. 문만 열고 나가면 많은 것들을 키울 수 있는 밭이 있습니다. 이 밭은 원래 집터였습니다. 집이 올려져 있고 사람이 매일 밟으며 지나갔으니 땅은 무지 딱딱했습니다. 또 유하네 집을 짓기 위해 포크레인이며 큰 트럭들이 마구 밟아놨으니 누가 봐도 밭이라 볼 수 없었죠. 씨앗들이 뿌리를 쉽게 내리려면 흙들이 포슬포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밭도 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 이사 온 유하네는 봄이 오자 밭 만들기 대작전에 들어갔습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밭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일단 밭 사이로 길을 만듭니다. 이제부터 사람은 길로만 다닙니다.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유하가 “왜 이리로만 다녀야 해”라며 뾰로통해집니다. 엄마와 아빠는 “이제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고 밭이니까. 유하가 먹을 맛난 채소들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가 막 밟으면 채소들이 자랄 수 없잖아”라고 합니다. 사각형 땅에 십자로 길을 내고 밭을 네 군데로 나눴습니다. 유하 아빠가 삽을 들고 나섭니다. 이 동네에서 70년 가까이 사셨다는, 올해 87세가 되신 앞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오십니다. “밭을 기계로 삶아야지. 삽을 들고 어쩌자는 거야.” ‘밭을 삶아? 냄비에 넣고 삶아?’ 처음 들어본 농사 전문 용어에 당황합니다. ‘삶다’는 말의 뜻 중에 ‘논밭의 흙을 써래로 썰고 나래로 골라 노글노글하게 만들다’가 있네요.



땅 속의 작은 구멍들

보통 봄이 되면 농부들은 집마다 하나씩 있는 커다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습니다. 경운을 한다고 하죠. 소똥 등으로 만든 퇴비를 잔뜩 뿌리고 밭을 갈아엎습니다. 겨우내 딱딱해진 땅을 보드랍게 만들면서 밑거름을 땅에 넣어주는 겁니다. 유하네는 기계로 밭을 갈아엎는 것이 땅에 어떤 영향을 줄까 고민합니다. 물론 수 천만 원 하는 기계가 없기도 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농법을 추구하는 유하네에게 강제로 땅을 매년 갈아엎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 무거운 트랙터가 매년 밭을 꾹꾹 밟으니 겉은 부드러워 보일지 몰라도 땅속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차례 귀농학교를 다닌 유하 아빠말로는 경단층이라는 것이 생겨 땅이 숨을 쉴 수 없게 돼 땅속 미생물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고 합니다. 미생물이며 곤충들이 함께 살아가야 땅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땅에서 자란 채소들이 사람들의 몸에도 건강을 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유하네는 기계를 쓰지 않고 최소한의 깊이만 갈아 엎어주기로 했습니다.

유하 아빠가 한 삽 땅을 뒤엎으면 유하 엄마는 돌을 골라내고 땅 속에 수십 년 묻혀 있었을 비닐이며 쓰레기를 골라냅니다. “땅 속에 왜 신발이 묻혀 있는 거야?” 함께 일을 하는 유하와 세하도 땅에 철퍼덕 앉아 보물찾기 하듯 쓰레기들을 골라냅니다. 전 주인이 집터로 썼으니 아무렇게 버린 쓰레기들이 땅속 깊이 들어있던 거죠. 이렇게 하다간 이랑도 못 만들고 한 해가 지나갈 것 같습니다. 네 칸 중 한 칸을 뒤집고 나머지는 내년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레이크로 흙을 긁어모아 이랑이며 고랑을 만듭니다. 다행히 강릉에 사는 농부 선배가 밭귀퉁이에 방치되어 있던 작은 관리기 하나를 가져가라고 합니다. 기계를 쓰지 않겠다는 높은 결의(!)를 살짝 무너뜨리고 낡은 트럭을 몰고 가 얼른 받아왔습니다. 땅 상태를 본 유하 아빠가 최소한 한 번은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입니다. 삽도 들어가지 않는 밭에 채소를 키우기는 어려우니 말이죠.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갔다 섰다를 반복하는 오래된 관리기로 땅을 조금 부드럽게 만든 후 고랑과 이랑을 만듭니다. 이랑에는 식물을 심고 고랑으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농사를 짓습니다. 식물이 자라는 이랑을 사람이 밟지 않으니 앞으로는 땅을 갈아엎지 않아도 됩니다. 식물들의 뿌리가, 곤충들의 먹이활동이 땅을 보드랍게 만들어 줄 테니 말이죠. 당근씨를 뿌리기 위해 호미로 이랑에 난 잡초들을 뽑습니다. 호미로 땅을 툭 친 순간 동그란 구멍이 보입니다. 씨를 뿌리겠다며 당근씨 봉투를 들고 있던 세하가 “쥐구멍이다”라고 외칩니다. 순간 얇고 작은 당근씨가 후두둑 땅으로 떨어집니다. 짜증이 올라오지만 ‘침착해’를 두 번 외치고 유하 엄마는 친절한 목소리로 “그러네. 두더지랑 땅쥐가 땅 속에 구멍을 만들었네”라고 합니다. 유하 엄마는 쥐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쥐들이 일을 열심히 해주니 땅이 부드러워지네”하며 호미로 골을 내고 세하와 당근씨를 뿌립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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