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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길 Mar 20. 2020

사회적 '가족'의 실현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의 다양한 형상을 담아낸다. 영화에서 가족의 표상은 생물학적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바람피운 아버지로 연결된 네 자매에서 시작되어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준 식당 아주머니와 남편, 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로 구체화된다. 이는 유전적 결합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유대, 일상의 공유를 통해서도 가족이 형성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영화에서 가족은 생물학적 결합으로부터 탈피하여 사회적 공동체의 형태로 확대될 수 있고 개인의 의지로 형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매인 사치, 요시노, 치카는 바람피운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 이복 여동생 스즈를 만난다. 어릴 때 바람을 피우고 집을 떠나 자신들에게 큰 상처를 준 아버지의 장례식이 여동생 스즈를 만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사치가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은 스즈였고 한 인연의 끝은 다른 인연의 시작이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아버지라는 인연이 끝나고 동생이라는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아버지의 장례식이 이들의 첫 만남의 계기가 된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소멸되어야 이들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자신들을 버린 상황에서 이들이 좋은 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자식들을 버렸던 것에 대해 자신의 가족과 분열되어 살아야 한다는 벌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네 자매는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물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얻은 상처가 무디어졌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얻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공유하며 가족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한편, 네 자매에게도 갈등이 존재한다. 이들의 갈등은 아버지가 바람피워 낳은 딸인 스즈와 세 자매간의 불화가 아니다. 대중 드라마와 소설 서사에서 통용되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드라마와 소설에서 바람피운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아닌, 아내와 남편의 바람 대상인 여성 간의 갈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바람을 피운 남편의 잘못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며 이로써 남편은 책임 추궁으로부터 면제된다. 이로 인해 바람의 대상인 여성은 부도덕한 개인으로 낙인화 되고 남성은 바람을 피울 수 있는 ‘능력 있는’ 개인으로 격상된다. 이러한 구도는 특정 성별을 낙인화하고 분열을 조장하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세 자매의 어머니와 스즈 간의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 자매의 할머니 제사에서 어머니와 스즈가 처음 만나 어머니는 스즈에게 일상적인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한다. 이 대화에 약간의 불편함만이 존재할 뿐, 서로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 자매의 갈등은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첫째 사치와 둘째 요시노의 갈등이 이들의 주된 갈등이다. 할머니 제사에 14년 만에 찾아온 어머니가 나타나 이들이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한다고 하자 사치는 화를 내며 안된다고 말한다. 이에 요시노는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며 사치가 한 집에 같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자신들을 어릴 때 버리고 간 어머니한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가족의 분열이 아니라 가장의 짐을 맡고 있는 사치의 부담을 덜어내려고 하는 요시노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가 다 떠나고 어린 두 동생을 맡아 길러야 했던 사치는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사치가 연애와 같은 개인적인 생활을 못한다고 보는 요시노는 가족의 공동체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여 사치의 짐을 덜어주려고 한다. 이렇듯 사치와 요시노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다. 한편, 어머니가 자매를 떠나고 나면서 생긴 오래된 갈등은 할머니의 제사 이후 어머니가 사치에게 스즈를 포함한 자매의 선물을 사 오면서 해소된다. 이는 어머니가 스즈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남편의 바람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극복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치는 자신이 만든 것과 할머니가 만든 추억의 매실주를 어머니한테 선물로 줌으로써 가족으로부터 벗어났던 어머니를 다시 가족의 품으로 초대한다. 이로써 남성의 바람으로부터 상처 입은 여성들의 화합과 연대가 완성된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의 형태는 절대적이지 않고 사회적 연대와 일상의 공유를 통해 가족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족은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로 표상된다. 바람을 피운 사람의 아이는 핍박받는 대중 드라마의 보편적인 전개로부터 탈피해 스즈는 마을의 보물이 되어 사회적 공동체를 가족으로 기능하게 한다. 결국, 가족의 형성은 절대성을 띄지 않고 개인의 의지와 유대의 발현에 기인하는 차원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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