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 경영자가 되고 재산이 신분이 된 로마의 경제학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는 고대 로마에서도 유효했다. 노예로 태어난 이들에게도 인간이라는 본질은 부정되지 않았다. 세습 재산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한층 더 우월한 평등을 누렸다. 고대 세계에서 세습 재산은 현대 경제의 기업이나 주식회사와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로마에서는 사업에 매진한다고 해서 고귀한 신분이 훼손되는 일은 없었다.
고리대금과 상거래는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해방 노예나 기사 계층뿐만 아니라 귀족과 명사들 역시 경제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부재지주가 아니었다. 단순한 자급자족은 경제 활동의 목적이 될 수 없었다. 품위를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세습 재산을 늘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무위도식보다는 사업, 그중에서도 고귀한 가문이 주도하는 거대한 사업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 집안의 우두머리인 가장은 곧 사업의 총수였다. 가족의 이름으로 묶인 세습 재산은 모든 경제적 성취의 근간이 되었다.
로마 경제의 주인공은 사적 존재로서의 가장이었다. 현대의 무역 회사는 주주가 바뀌어도 법인이라는 실체가 유지된다. 로마의 세습 재산은 주인이 해상 무역을 그만두고 모든 자산을 토지에 쏟아부어도 그 주인의 이름 아래 고스란히 남았다. 재산의 형태가 변할 뿐 주인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동산을 관리하는 주인은 토지 경작을 직접 감독했다. 관리인과 노예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생산물을 가장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전략을 짰다. 손에 쥔 돈을 놀리지 않고 고리대금으로 운용하는 일도 필수적이었다. 이 모든 활동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시민권이라는 권력을 이용하거나 명예직을 남용해 부를 축적하는 일도 빈번했다. 정직한 방법과 편법이 공존하는 가운데 부를 향한 로마인들의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보여준 부에 대한 예찬은 현대인들에게 소유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재산은 단순한 소비의 수단이 아니라 한 개인과 가문의 존재를 증명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오늘날 우리는 법인이라는 가상의 주체 뒤에 숨어 경제 활동을 이어가지만 로마인들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자산과 활동에 직접 책임을 졌다.
재산의 소유가 인간의 평등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던 로마의 현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동시에 부를 일구고 관리하는 것을 고귀한 의무로 여겼던 그들의 열정은 자본의 역동성을 상기시킨다. 진정한 부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소유한 자산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며 그것을 어떻게 책임 있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소유주의 고귀함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