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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Dec 06. 2023

그 날, 과로

시골의 한 전통시장에서 야채와 과일을 팔았다. 일매출 2천만원인 곳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는 곳에서 하루종일 혼자 일했다. 양파 8개에 2천원이면 줄을 서지 않겠는가. 카운터에 하루종일 서있어야 했다. 손님에게 끊임 없이 말을 해야 했다. 포스기 없이 계산을 해야 했으니 손님들이 담아온 과일과 야채를 하나하나 손으로, 말로 세면서 계산을 해야 했다. “콩나물 천원, 계란 7천원, 샤인머스켓 8천원, 사과 저기서 몇 개 짜리 사왔어요? 4개 만원 짜리? 밖에 있는 10개 만원 짜리? 10개? 네 세어볼게요. 아 11개네. 하나 빼야 해요.“ 엄청난 기억력과 암산력을 요했다. 다른 손님들이 말을 걸면 까먹어서 다시 세야 했다. 야채와 과일 가격은 시간대별로 달라진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가격(바뀌기 전 가격)으로 계산하면, 손님들이 매의 눈으로 한 소리를 한다. “아삭이 천원이 아이에요?” “아삭이 1500원인데? 아 가격 내렸네 다시다시. 내가 오백원 띵겨다 사탕 사먹을라 캤나부다!“


콩나물 한 봉지 처럼 간단한 것을 사는 손님들은 줄을 서지 않고 돈만 달랑 던져놓고 가버렸다. 미칠 노릇이었다. 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줄이 너무 밀려 있었다. 너무 정신 없는 와중에 “다른 가게는 만원 이상이면 주차권을 주는데 여기는 왜 3만원 이상이냐“ ”여기는 왜 카드가 안되냐“는 사람들, 공짜로 비닐봉투 더 달라고 하는 사람들, 과일 몇 개만 더 서비스로 달라고 요구하고 안 된다고 하면 뺏어 가는 사람들, 카운터에 야채와 과일 한 가득 가져와놓고 돈이 없으니 이것 저것 빼서 만원어치를 맞춰달라는 사람들, 만원 짜리 상품권 내고 3천원 어치 산 다음 현금으로 잔돈 바꿔 달라고 하는 사람들(원래 60% 이상 써야 함), 물건 사지도 않으면서 잔돈 바꿔달라는 사람들, 주차권 안 준다고 산 물건 다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 계산한 거 못 믿겠다며 다시 계산해달라는 사람들, 오십원 짜리 백원짜리 한 바가지 꺼내놓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히 영업을 해야 한다. 신들린듯 입을 털어서 야채를 다 팔아댔다.


내 몸은 하나인데 감당이 안 됐다. 너무 바쁘니 짧은 쉼은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쉴 곳도 없다. 쉬더라도시장 바닥에 앉아야 한다. 물론 점심시간은 주어진다. 근처 분식집에서 점심으로 오뎅 먹고, 분식집에 죽치고 앉아 진상처럼 오뎅국물을 여러번 리필했다.여기를 나가면 남은 시간 동안 앉아 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손님 많이 온다고 자리 만들어줘야 한다고 쫓겨났다. 아 다리 너무 아픈데. 비틀거리면서 앉아 있을 곳을 찾았다. 은행 안에 의자가 보였다.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다시 일하러 들어갔다. 퇴근할 때쯤 되니 심한 현기증이 났고 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걷기도 힘들만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다리는 부어 있었다. 일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를 그 때 처음 느꼈다. 그 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이후 인터넷으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라는 책을 샀다. 만 오천원.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몸을 갈아야 했는지 생각하면 아까웠지만, 또 다른 과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내 시선이 향했던 곳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일테니까, 조금 더 많은 곳에 머물러야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눈에 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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