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워실의바보 Dec 14. 2023

최저시급 못 받는 70대 할머니의 ‘투잡’

조금 날씨가 풀렸지만 쌀쌀한 날이었다. 할머니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바닥에 앉아 뻥튀기를 팔고 있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채가 아니라 뻥튀기. 옆에 전통시장에서 뻥튀기 장사하고, 퇴근하고 남은 거 파시는걸까. 궁금증이 생겨 3천원을 내고 뻥튀기를 샀다. 그 할머니 옆에 앉아 뻥튀기를 뜯어먹었다. 약 1시간 동안 앉아서 묻고 들은 얘기를 적어본다.


김말자(가명) 할머니는 72세다. 올해 4월부터 전통시장 안에 있는 가게에서 칼로 양파 다듬는 일을 하고 있다. 사장이 아니라 ‘노동자’ 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을까. 과정은 대략 이렇다. 농사일 하던 남편이 사망하면서 소득이 끊겼다. 아들집에서 지내면서 손주를 봐줬고, 생활비로 백만원 정도를 받았다. 손주가 어느 정도 크고 아들과 며느리의 눈치가 보였다. 집을 나와 삼십만원 짜리 무보증 원룸을 구해 혼자 살았다. 돈이 필요했다. 먹고 살아야 했다. 공과금도 내야했다. 아들과 시어머니가 큰 병에 걸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천만원 정도 빌렸기 때문에 빚을 갚아야 했다. 그 할머니도 아픈데가 많아서 병원에 가야 했다. 아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소개시켜준 곳이 야채가게였다.


할머니는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일한다. 하루에 일당으로 5만원을 받는다. 원래 받아야 할 돈의 절반도 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주5일 출근해서 하루 12시간 일해야 한 달에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주5일 60시간 노동을 할 수 없다. 할머니의 근무요일은 사업장이 바쁘냐, 바쁘지 않냐에 따라 정해진다. 바쁘지 않으면, 출근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소득은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하다. 할머니는 예전에 사장보고 “너무 조금 주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것도 많이 주는거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법정 최저시급이라는 기준 없이 ‘조금’ ‘많이’ 라는 단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할머니는 최저시급이라는 단어 조차 무엇인지 모르고, 사장은 할머니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얼마 받아야 하는지는 몰라도, 이건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최저시급과 계산기를 두드려서 그 할머니가 받아야 할 돈을 말해줬다. 할머니는 내가 하는 말들을 매우 낯설어했다. “늙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가 나이도 많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라서 조금 받는 것 같다“며 자기 탓을 할 뿐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작년에 들어온 60대 노인도 똑같이 양파를 다듬는데 6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갸는 내보다 먼저 들어와서 많이 받고, 나는 올해 들어와서 그럴끼다” 고만 말했다. 10년 일한 노인은 양파를 망에 담는 일을 하는데 7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갸는 10년이나 일했고 양파 담는 일은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다 받아야 할 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는건데, 그 할머니는 만원 이만원 더 받는 ‘갸’들을 부러워했다. 주변에서 노인 일자리 하는 사람은 한 달에 27만원 받는다고, 그 사람들보다는 자신이 낫지 않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 시간에 받아야 하는 돈을 알게 됐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내일 사장에게 가서 “최저시급이 9620원인데 어떻게 나한테 여태까지 일당 5만원을 줄 수가 있냐” 라고 삿대질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장 바닥에 앉아서 일하니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무지였다. 할머니 옆에 1시간 앉아 있으니 허리가 엄청 아파오기 시작했다. 젊은 나도 이런데, 성치 않은 몸으로 12시간 앉아 있다가, 마감이 다가올 때 청소하면서 허리를 계속 굽혀야 하는 고통을 생각했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니 허리가 매우 아프다고, 한 달에 두 세번씩 정형외과에 가서 허리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그 주사는 너무 아파서, 맞을 때 마다 운다고 했다. 한 달에 두 세번을 맞는데, 한 번 맞을 때 마다 10만원씩 들어서 두렵다고 했다. 의사는 할머니에게 “일을 그만둬야 낫는다”고 말했다. 그만두면 당장 밥을 굶고 전기세를 못 내는데, ‘건강한 몸’이 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착한 할머니는 아마도 표정을 일그리며 “니가 돈 줄끼가?” 라고 삿대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야채가게에서 받는 월급으로 주사 맞고, 빚과 이자를 갚고, 세금 내면 남는 게 없다. 국가에서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매달 30만원씩 지급하지만, 노인이 아니라 집주인이 월세로 가져간다. 할머니가 12시간 일하고도 뻥튀기를 판매하는 이유다. 할머니는 가끔 사람이 많은 번화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약 2~3시간 동안 뻥튀기를 판매한다. 그 ‘가끔‘은 비 안오는 날, 허리가 죽도록 아프지는 않은 날이다. 일터에서 번화가까지는 약 1.5km. 내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리니 할머니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퇴근하고 성치 않는 몸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 온 몸의 고통을 견뎌가면서 걸어가야 한다.


뻥튀기 한 봉지에 2천원에 떼온다. 타지에서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윤을 남겨야 하니 3천원에 팔고 있다. 1개를 팔 때 마다 1천원이 남으니, 7개를 다 팔면 7천원을 손에 쥔다. 귤은 한 박스에 1만2천원에 떼온다. 7봉지 정도 나온다. 1봉지에 2천원씩 받는다. 7봉지를 다 팔면 1만4천원을 벌고, 실제로 손에 남는 돈은 2천원이다. “이거 다 팔아도 벌이가 안 된다“ 고 할머니는 말했다. 다 팔릴 일은 없으니 벌이는 정말 안 되는 셈이다. 그래도 뻥튀기는 상하지 않아서, 버리지 않고 몇 일 뒤에 또 팔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저번달 까지는 식당에 들어가서 팔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길바닥에 앉아서 팔고있다고 했다. 야채가게에서 12시간씩 앉아 있었는데,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또 앉아 있어야 한다. 허리가 나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내가 여기저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그동안 만난 ‘고마운 사람들’을 회상했다. 어떤 사람은 3천원 짜리 뻥튀기 세 개를 만원에 가져가서 거스름돈 천원도 받지 않았고, 노점상 상인은 추운날 귀마개와 모자를 선물로 줬다. 40대 여성은 아이와 함께 와서 세봉지나 사갔다. 주변에 아는 사람은 돈을 이자 없이 빌려줬다.

“이제 안 팔릴 것 같다”며 밤 9시까지만 앉아 있겠다던 할머니는 9시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앉아 있으니 손님들이 계속 뻥튀기를 사갔고 7개가 팔렸고 7천원(21000원-14000원=7000원)을 벌었다. 할머니는 “예쁜 아가씨 덕분에 많이 팔았다”고 연신 고마워했다.


9시 30분이 됐다. 할머니는 내일 이른 아침에 야채가게로 출근해야 한다며 남은 뻥튀기를 리어카에 싣었다. 나는 잘한걸까? 나는 할머니에게 30분 연장근로를 하게한 셈이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여기서 나쁜놈은 누구일까. 한 달에 기초연금 삼십만원 띡 주면서 죽을 때 까지 일을 쉬지 못하게 하는 국가일까, 최저시급 조차 주지 않아 할머니를 차갑고 딱딱한 길바닥으로 내모는 사장일까, 앉아서 뻥튀기 먹으면서 할머니 연장근로 시킨 나일까.


나는 할머니와 헤어진 후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래도 써주는 거에 감사한거지“ “신고하면 큰일나.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나 짤리지“ 라는 말을 한참 생각했다. 계속 울컥거렸다. 존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하는 노동조건 속에서 서로 서열을 메겨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데도 목에 칼이 들어오는 삶을, 몸이 허락해준다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싶다는 삶을, 일하면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몸 상태를 생각했다.  할머니보다 아주 조금 노동법을 알고 있는 기자가 옆에 있어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신고하면 해고를 당하고, 해고 당하면 5만원 받고 12시간 일할 수 있는 ‘특권’이 사라진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스마트폰을 꺼내 1주일치 날씨를, 뻥튀기를 팔 수 있는 날을, 하루에 15시간 일할 수 있는 좋은 날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할머니를 만난 후 가끔 시장에 갈 때 마다 걸어다니면서 가게들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일하거나 부부가 일하는 곳이 많지만, 노인들을 고용하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가게에는 바닥에 앉아서 파를 수북히 쌓아두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 3명이 있다. 저 분들은 최저시급을 받을까. 하루에 몇 시간 일할까. 어떻게 저기서 일하게 됐을까. 퇴근하면 버스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서 집까지 걸어서 가는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는 하루 종일 일하고 집까지 걸어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