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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Nov 09. 2022

선물 같은 올해

소비의 방향

신규교사가 된 스물다섯의 나는 어렸다. 월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 동안 못 먹고 못 입고 살았으니 월세, 공과금, 휴대폰 요금, 대출금을 제외하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는데 돈을 다 썼다. 그런 소비가 삶의 전부였다.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진 나는 퇴근하면 소비하거나, 수업 준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스쿠터 타고 떠돌아다니거나. 그런 생활을 1년 가까이 했다. 사는 게 너무 지겨웠고, 공허했고, 불행했다. 그동안 공부를 질리도록 했으니 무언가를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 조차 없었다. 내가 더 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1차적 욕구에 충실한 한해였다. 하루에 식비로 몇 만원씩 쓰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것은 책 값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한 일 년쯤 지났을까. 그때부터 내 삶이 조금씩 변해갔다. 가치 있는 그러니까 스물 다섯살 때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투자가 늘었다. 배움과 경험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 때 산 옷들은 당근 마켓에 당시 가치의 1/3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팔아 재끼고 있지만, 하지만 내면을 채우는 데 투자하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학생 때 매우 좋아했던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수로는 “네가 다시 태어나는 날, 그날이 바로 네 생일이야”라고 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내가 많이 자라 있는 게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올해 무엇을 얻었는지 물어보면, 꽤 근사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내내 “생일이 대수냐” 라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스물일곱 살이 돼서 맞게 될 생일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년 생일에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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