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국수를 삶는 여자
- 소눈깔이네.
크고, 동그랗고, 맑은 눈.
어찌나 숫기가 없는지, 하도 조용해서 가끔은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건만.
한 번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면 사람들은 으레 그녀의 눈에 대해 얘기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 전,
아니 되고 나서도
- 민형 엄마.
그녀는 사람들이 부르면 눈을 반짝일 뿐
큰 소리 낼 줄을 몰랐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귀하게 자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떠들었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당이 딸린 기와집에, 머슴이며 식솔까지. 그게 다 얼마야.
그러나 저러나 가장 큰 기척이,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전부인 여자였다.
하지만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문다고,
사람이 극한에 놓이니 못 할 게 없더라.
양반 족보를 돈 주고 산 망나니에 남편 잃고,
왜놈들 난리에 나라를 잃더니,
평생 살던 기와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났다.
그러니 어떡해.
두 아들하고 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니,
여자는 시장 구석에 자리 잡고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국물 우려낼 소 잡뼈조차 구할 수 없어
멸치 쪼가리 넣고 끓인 국물은 그래도 깨나 먹을 만했으나,
걸핏하면 나타나는 시정잡배들이 어깃장을 놨다.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장사를 하냐. 감 놔라. 배 놔라.
그러니 어떡해.
두 아들하고 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니,
여자는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런 육시럴, 이런 쌍놈의 새끼들.
그렇게 키운 민형이었건만,
내 아들을 쏘아 죽인 고운이
내 남편을 때려죽인 놈의 딸이 그녀 앞에 누워 있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 죽지 말어라. 죽지 말어.
그녀는 물그릇에 수건을 빨아 고운의 몸을 닦았다. 야윈 어깨. 부러질 듯한 팔꿈치, 다 깨진 손톱.
- 엄마.
고운과 숙희 걱정에 뛰어온 민우는, 그런 엄마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마음이 얼마나 미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엄마가 민우에게 말했다.
- 그 애에 대한 내 마음이 바뀌었냐고? 글쎄다.
근데 저 아저씨가 가져온 짐에 민형이 낙서가 있더라.
김고운.
세 글자를 얼마나 꾹꾹 눌러썼는지. 이름만 적혔는데도 다 알겠더라.
아주 온 마음으로 아끼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