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 - 박새로이
내가 먼저인 이유
가장 영(young)하던 10대 20대 청춘, 그 당시 나는 빛나지 못했다. 자기 관리도 할 줄 몰랐고, 나답게 행동할 줄도 몰랐고, 자존감도 낮았으며, 조급했다.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남의 시선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의 눈에 매력 없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내가 아닌 남처럼 행동하려고 애썼고, 관계에 주눅 들어 조급했다.
결국 돌고 돌아 깨달았던 건, 답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붓다 역시 모든 문제의 해답은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 누구에게든, 내가 남에게 사랑받고 남이 나를 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나답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남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라고 말씀해 주셨던 (그 외에도 나란 사람에게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신) 은사님이 계셨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 뭉뚱그려진 표현으로 다가와 와닿지가 않았다. 물론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그 말은 진리였다. 사람은 1순위가 스스로가 되지 않으면 모든 관계에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쫓아야 할 방향성이 잘 못 되면, 목적지에서 크게 빗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돈과 여자, 결과의 보상을 좇을수록, 오히려 그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 하겠다. 인생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며 예외라는 것이 늘 존재하니까. 하지만 단언컨대 대다수에게는 분명히 적용되는 법칙이다. 내 일에 빠져 살고 나를 가꾸고 내 인생을 신경 쓸 때 과정 그 자체를 즐길 때, 비로소 돈이 벌리고 여자가 따라오고 결과로써의 보상이 주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확률이 높아질 뿐, 없을 수도 있다. 돈, 여자, 보상은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이라는 플러스알파적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플러스 요소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나다움, 스스로의 일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다.
인생의 전성기는 모두가 다르다
내 나이 30. 내 인생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 같다. 이제야 조금은 나를 가꿀 줄 알겠고, 이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메타인지가 되며, 이제야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를 잘 알고 그래서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며 실망하고 실패하고 또 이뤄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답지 않은 삶을 좇다 보니 되려 내가 뭘 싫어하고, 어디에 불리하고, 어떤 것에 불편한 사람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즉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고, 어디에 유리하고, 어떤 것에 편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빨리 깨닫고 그래서 자기 삶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때 전성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10대 20대에 전성기가 온 사람들이 부럽다. 이들은 큰 시행착오 없이 주어진 재능, 운, 환경으로 가장 빛나던 시절에 그 나잇대에서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의 즐거운 추억, 원초적으로 남을 압도하는 경험, 서로가 처음인 가슴 뛰는 데이트는 30대가 되면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 이들은 그 후 삶에서 이만큼의 전성기를 다시는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풋풋했던 시절의 전성기로 쌓였던 자신감과 긍정적인 기억이 남은 인생에 큰 힘이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그렇지 못했던 내 과거가 아쉽고, 나와 달랐던 그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과거는 이미 지난 것인데. 확실한 것은 초라했던 나의 과거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태원 클라쓰]가 뭇 남성들의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박새로이라는 캐릭터에게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수컷의 냄새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소신 있게 행동하고 잘못된 것에 큰 소리 낼 줄 알았다. 학창 시절엔 친구 하나 없이도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갔으며, 빛나는 청춘을 감방생활과 노가다, 원양어선을 타며 보냈다. 그렇게 나이가 30이 되도록 여자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지냈지만, 그는 어떤 흔들림이나 조급함 없이 꾸준히 정진하여 마침내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어낸다. 보잘것없던 소년이 무려 대기업 회장을 무너뜨리는 소년만화가 따로 없는 비현실적인 내용이지만, 이 이야기는 많은 남성들에게 자신감과 위로를 전해주었다. 특히 "내 가치를 니가 정하지 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난!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라는 대사는, 실제로 우리네 삶의 전성기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수도 없겠지만, 남성들로 하여금 내 삶의 주체인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고 이뤄나갈 수 있다는, 다 끝난 것 같아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