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비질란테를 보기 위해, 나는 예전 기억을 살리고자 웹툰 비질란테를 다시 정주행 했다. 과연 액션이면 액션, 스토리면 스토리, 다시 봐도 몰입하게 되는 훌륭한 만화였다. 비질란테의 스토리는 CRG, 작화는 김규삼이 담당했는데, 웹툰을 꽤나 좋아하고 또 많이 봐온 사람으로서 김규삼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그것은 '대사'다. 물론이 작품은 스토리 작가가 CRG이기에 그가 쓴 대사이겠지만,여하튼 김규삼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사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고 그를 뒷받침하는 어휘력도 상당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작품이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다. 대사력 투 탑인 이사장과 불사조의 입담을 읽고 있자면, 김규삼 작가가 글을 얼마나 많이 읽고 써본 사람인지 짐작이 간다.
웹툰 비질란테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법과 범죄에 대한 무거운 대사들이 오가는데, 대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설득력 있다 보니 보면서 등장인물 각자의 상황과 입장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스토리나 인물이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인데 바로 이것이 비질란테라는 만화의 작품성을 드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비질란테 김지용과 조질란테 조헌의 대화를 보면, 서로가 가진 입장과 감정을 근거로 상당히 이성적인 대화를 한다. 김지용은 피해자는 이미 지나간 일인 양 취급하고 가해자에게는 관대한 법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조헌은 비질란테를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하지만 너무 뛰어난 인물이기에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으로. 가해자의 죄만큼 무거워야 하는 법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은 물론 그 이후로 가해자가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하며 더 많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도 이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김지용의 말에 조헌은 동의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일 뿐, 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죄이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약자와 피해자의 입장에 서봤는가
어마어마한 인상과 2m 거구의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당신 조헌은, 결코 약자와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김지용은 말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성인 덩치에, 중고등학생 때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완력을 가졌을 것이며, 따라서 인상만 써도 타인과의 갈등이 조정되는 삶. 그것이 당신 조헌의 삶이기에 당신은 우리 같은 약자와 괴롭힘 당하는 자, 범죄로 인생이 짓밟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속이 문드러지는 감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다른 대사들보다도 이 대사가 상당히 와닿았다. 나 역시 약자였고 피해자였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약한 입장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약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약해보지 않은 자가 약자를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공감해 주는 척 또는 공감해 주려고 노력해 볼 뿐, 강자는 절대 마음을 겹쳐 약자를 공감해 줄 수 없다. 약자를 공감해 줄 수 있는 강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오직 한 부류밖에 없다. 과거에 약했지만 강해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강해진 과정이 특히 자발적 의도와 노력을 통한 것이었다면, 그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다. 그게 주인공 김지용이다. 드라마 비질란테에 등장하는 김지용은 키 187cm의 남주혁이지만, 실제 웹툰 비질란테에 등장하는 김지용은 키 170 초반의 인물이다. 살아오면서 겪은 괴롭힘과 힘듦, 약자의 입장을 겪어온 사람인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피해자인 자신을 법이 지켜주기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고 또 필요하다고 여겨 강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감히 말하지만, 타고나길 정신이 강한 사람이 있고 신체가 강한 사람이 있다. 둘 중에 누가 더 좋은 것이냐고 따질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정신이 강한 사람은 신체가 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신체가 강한 사람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정신이 강해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정신은 정신력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올바른 자존감이나 자신감, 긍정성을 말하는 것이다. 신체가 강한 사람은, 그러니까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한)인 사람은 또래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한창 정신이 성숙하고 자라나는 청소년기에 높은 확률로 긍정과 성공에 가까운 경험을 많이 한다. 나를 무시하지 않는 또는 무시하지 못하는 친구들, 항상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상황들, 두려워하거나 올려다보는 시선들. 이렇게 피지컬에서 오는 압도감으로 주변인들에게 선망과 두려움의 눈길을 받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가며 뭐든 자신 있게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반면에 약자는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강자와는 반대로 어렵고, 노력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렇기에 강자와 약자는 다르며, 원래 강자였던 사람과 약자에서 노력해 강자가 된 사람 역시 다른 것이다.
결론은, 당사자가 되지 않거나 당사자와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