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월)
나는 연극 <체크메이트>를 상연하기 전 관객들에게 포스터 하나로라도 더 마주치고 싶어
여러 심리상담센터에 우편을 동봉해 등기를 부쳤다.
그만큼 간절한 마음이었고,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관객들이 한 분이라도 더
따뜻한 현재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편지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었고,
<체크메이트>는 2025년 초순에 제1회 123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연기상을 모두 석권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우편은 선생님께 많은 용기를 내어 드리는 저의 우편 로비입니다.
저는, 극작가 김옥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양극성 정동장애/트라우마환자)이자
자살유가족이자 미투고발자이자 학교폭력피해자, 가정폭력피해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이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구타하였으며,
열여섯에 저는 꿈을 위해 다녔던 극단의 대표에게 성폭행을 6개월간 당하였고,
초중고를 다니는 내내 학교폭력 피해자였습니다.
10년 뒤 어머니는 약물중독으로 자살하였고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지금도 재활 중입니다.
동생은 소아당뇨로 실명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성년 피해자 최초로 미투를 하였습니다.
가해자에 대하여 2019년 형사재판으로 시작된 재판은
올해가 다 돼서야 민사재판까지 마무리 되었습니다.
6년 징역, 5천만원 배상으로 판결되었습니다.
맞습니다.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을 저는 혼자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연극’은 제가 살아가기 위한 생존 수단 그 자체였습니다.
2019년에 저는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고 난 후
자살 사고가 심해졌고 우울증 진단을 받고 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가 얼마나 정신질환자에게 유효하고 필요한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1년 반의 심리치료를 하다보니 저는 그 과정에서 나의 ‘현재’를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열 여섯의 김옥미가 아니라는 것,
내가 겪었던 어떤 현장에 내가 당도할 리 없다는 믿음,
나,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저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마음토닥병원의 김은지 선생님과 저의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사 선생님 덕에
나의 발바닥이 어디에 있는지, 나의 허리는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
주위에 보이는 색깔은 무엇이고 들리는 소리는 무엇인지,
하나씩 하나씩 나의 호흡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현재를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그 경이로운 과정 속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연극 <체크메이트>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심리치료 포맷의 내용입니다.
상담사와 내담자가 등장하고, 내담자의 내면인 존재가 함께합니다.
저는 한 명이라도 더, 제가 느끼는 경이로움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리고 얼마나 벅찬 일인지를 모두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당신과 함께 여기 있음을 직면하고,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우리네 삶을 환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굴로 찾아 뵙고 부탁드려야 하는데,
이렇게나마 용기내어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포스터 한 장 동봉하여 저의 마음을 보냅니다.
부디 관객 한 명이라도 더, 저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자리 한 켠 포스터를 위한 장소를 마련해주신다면,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눈부신 생을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2년 11월, 작가 김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