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8)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그저께 심리치료에서 나는
약을 이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조울증의 내가,
조증의 상태로 각성한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로봇처럼 인생을 쟁취하듯 살면 느껴지는
에너지나 엔돌핀 같은 게 있었다.
약을 먹으면 0의 상태가 된다.
조증에도, 울증에도 침잠하지 않도록
신경물질과 호르몬을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 상태가 적응이 되지 않아 안정제를 또 먹기도 한다.
심리치료선생님께서는 내게 재차 묻는다.
편안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건가요?
꼭 무엇을 이루어야 하나요?
나는 답했다.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일을 이루었다고.
이미, 많은 것을 해냈다고도 생각되지만
그것은 내가 해낸 것이 아니라
나를 갈아넣어서 쟁취한,
각성한 상태의 내가 이룬 것이라고,
내가 이룬 것이지만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하면서도 악순환의 고리와도 같은 논지였다.
위기가 그립다고 나는 말했다.
위기가 있으면 나는 항상 성장해왔다며.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만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나는 요즘 “점심병”이라고 연인과 말하고는 한다.
가장 한가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점심 즈음,
나는 안정제를 먹는다.
가슴이 뛰고 불안해서 진정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럴리가 없다고, 무엇인가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여러 불행회로가 생각이 난다.
행복회로를 떠올려야 하는데,
내 엔돌핀은 불행회로로 지속된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된다면,
회사를 그만두면,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면,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글을 못 쓰게 된다면,
번뜩이는 눈으로 나는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드라마를 내려놓아야 한다.
드라마틱하기 위해 드라마가 있는 것이 아닌데.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있다는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나 자신에게 그것을 적용하는 일이 힘들다.
작가의 눈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인물이 아니다. 인간이지.
일찍 출근을 했다.
눈이 일찍 떠졌기 때문인데,
머리가 맑아져서 그래도 이렇게 일기를 쓴다.
요전에는 경성과 국궁을 했다.
경성은 차근차근 국궁을 가르쳐주었다.
경성은 과녁을 맞힐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똑바로 서는 방법과,
활을 당기는 나의 힘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다보아야한다고,
시위를 놓기 전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고,
그런 단련이 지속되면
화살은 자연스럽게 과녁을 맞추리라고.
거의 한 시간을 내내 자세를 연습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다.
경성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이전에 그런 방법으로 나에게
국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생각이 났고,
열심히 자세만 죽어라 연습했던 나도 생각이 났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경성과 나는 매주 국궁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저,
똑바로 서는 방법,
나의 힘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