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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쓰레기통에 내려앉은 여자 아이

(17.03.13)

by 김옥미

문이 열린다.

여자 아이가 들어온다.

문 앞에 계산대가 보인다.

아주머니가 파리채를 들고 계산대에 앉아있다.

여아는 주위를 둘러본다.

제과와 생필품 진열대, 주류 냉장고가 보인다.

구석의 과자 코너로 향한다.

과자 하나를 집는다.

지갑 안에 있는 흰 봉투를 꺼내 지폐를 세 본다.

지폐를 봉투에 넣는다.

여아는 지갑의 동전 주머니를 확인한다.

탈탈 털어본다.

동전 세 개가 짜르르 떨어진다.

여아는 과자를 내려놓는다.

코너를 돌아 계산대를 슬쩍 본다.

아주머니는 티브이를 보고 있다.

아주머니는 부채질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티브이를 보며 카랑카랑 웃어댄다.

여아는 다시 과자 코너에 간다.

두리번대다 동전을 줍는 척 후드 티 안으로 과자를 집어넣는다.

천천히 일어나, 어기적어기적 가게 출입구로 향한다.

계산대의 아주머니가 보인다.

아주머니는 여아가 발을 뗄 때마다 유심히 쳐다본다.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하드 아이스크림이 녹아 뚝뚝 바닥에 떨어진다.

여아의 몸에서 부식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후드 티의 모자를 최대한 눌러 쓰고 계산대 앞에 멈춰 선다.

살피다 껌 하나를 집는다.

껌을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을 꺼낸다.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박아 넣는다.

아주머니가 여아의 지갑을 가로챈다.

진열대 천장 구석의 거울을 가리킨다.

여아의 몸통을 손가락질한다.

지갑을 열어 보더니 봉투를 꺼낸다.

봉투에서 만원 몇장을 여아의 얼굴에 집어 던진다.

아주머니가 일어서자 마주 선 여아의 깡마른 몸이 더 작아 보인다.

아주머니는 여아에게 휴대 전화 번호를 묻는다.

전화를 건다.

통화를 끝낸 후에도 다시 수화기를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여아를 노려보다 여아의 뺨을 후려친다.

여아는 뒷걸음질하며 배를 감싸 안고 아이스크림이 꼬라박힌 쓰레기통만 본다.

가게에 노인이 뛰쳐 들어온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다.

한참 숨을 몰아쉰다.

노인이 여아를 자신의 뒤로 숨긴다.

노인은 아주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허리를 숙인다.

아주머니는 지폐가 들어있던 봉투를 보여주며 노인에게 소리친다.

노인은 바닥에 흩어져 있던 지폐를 줍는다.

지폐를 일일이 펼친다.

지폐를 모아 여아의 손에 쥐어준다.

노인은 아주머니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여아의 팔을 끄집어 당긴다.

여아는 빳빳이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주먹을 말아 쥔다.

노인은 여아의 후드 모자를 벗긴다.

손수건으로 여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여아는 입을 악 다물고 고개를 떨군다.

여아의 후드 티에서, 봉지 과자가 툭. 떨어진다.

여아는 파르르 몸을 떤다.

주먹을 편다.

쥐고 있던 지폐를 한장 한장 찢어발긴다.

쓰레기통에 던진다.

지폐를 찢을 때마다 쓰레기통에 여아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후두둑. 후두두둑.

여아는 콧물과 땀과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채로 쓰레기통 앞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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