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너절 Oct 08. 2021

식료품점 김너절 01

3년 만에 찾아온 반가운 얼굴



일반적으로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입국하는 이들(E-9 단순 취업 비자)은 한 번의 연장을 거쳐 약 5년 간 일한 뒤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 일을 하며 만나는 인연의 대부분이 5년짜리 인연인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건지 떠날 기한을 넘기고 머무르는 '불법체류자'들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A와 B


A는 남성이고 08년도쯤 한국에 왔다고 한다.(국적은 밝히지 않겠다.) 능글거리지도, 터무니없이 가격 흥정도 하지 않아 젠틀하다 생각했다. 우리 매장을 처음 찾을 때부터 그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단점이라면 한 가지, 말이 참 많았다.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올 때마다 나에게 늘어놓는 말이 5분 이상 이어졌다. 당시 카운터를 지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던 나에게 A는 조금은 귀찮은 손님이었다.


그러던 A가 어느 날부터는 꽤나 힘든 이야기를 했다. 공장에서 만난 다른 국적의 여자 친구 B가 일을 하다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부터 일용직 소개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향의 친구들과 갈등이 생겼다는 이야기까지.


분명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 작은 공장도 차렸다고 했는데 거듭되는 악재에 꽤나 힘들어 보였다.


A의 여자 친구인 B에게도 그 시기는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겨우 부상에서 회복해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당시 B 또한 불법체류 신분이었다.) 출국을 하면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와병 소식에도 발만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자진출국 불법체류 외국인 입국 금지 면제]

(2016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시행된 적이 있다.)


A와 B에게 찾아온 희망이었다. 출국 시 여권에 46-1이라고 적힌 도장(강제출국, 최장 5년간 재입국 금지)이 찍히느냐, 68-1(출국 권고, 이후 입국 시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이 찍히느냐는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여자 친구가 출국을 했는데 정말 68-1이 찍혔대요."


확률 50:50의 도박과도 같았던 자진출국이었다. B는 이듬해 대학생 신분으로 재입국했다.



문제는 A였다. B가 떠나고 계도기간을 넘겨서도 한국에 계속 머물던 그는 어느 날 팔에 깁스를 한 채 매장을 찾아왔다. 얼굴은 멍투성이였다. 같은 나라의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한 것이다.


"동생, 내 통장 좀 맡아줘요."


A는 건설노동자였다. 성실한 그는 인력 소장의 눈에 들어 일거리가 끊기지 않았고 부산/경남 건설현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친구들에게도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그도 소장에게 친구들을 소개해준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실하지 않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면? 다시 추천할 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린치의 이유였다. 말다툼을 벌이다 각목 같은 것으로 공격을 당한 A는 여권까지 뺏겼다. 일종의 보복행위였다.


가해자는 그날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다 추방되었고 A는 얼마 뒤 나에게 맡겨놓은 통장을 찾아갔다. 이렇게 고생할 바에 그냥 귀국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5년짜리 인연이라고 말했듯 장사를 하다 어느 순간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고향으로 돌아갔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2018년 이후 발길을 끊은 A와 B도 그렇게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2021년 5월 1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주말 오후였다. 마스크를 썼지만 익숙한 눈매, A였다. 뒤따라 들어온 것은 B.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두 얼굴을 마주했을 때 밀려들던 감동이란...


두 사람은 양국에서 한 번씩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어 돌아왔다. B는 어느덧 대학원생이 되어있었고 A는 한 번의 반려가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중단되었던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던 시점에 동반 비자를 발급받아 올해 2월에 입국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최종 목표는 귀화라고 했다. 그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에 비하면 귀화 과정은 꽃길이 아닐까.


(B와 나눈 카톡 대화의 일부이다. B가 나에게 언니라는 표현을 썼지만 후에 내가 더 어리다며 호칭 정정을 했다.)


솔직히 나는 B의 말대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다. 성질머리가 깨끗하지 않아 어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국인 할아버지랑 싸웠기 때문. 손님들과 사사로이 엮이는 것이 피곤하다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나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와 준 건... A와 B의 기억이 상당히 왜곡된 것이 틀림없다.

하. 하. 하.


그리고 이 일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니 내심 부러워하셨다. 나보다 더 긴 세월 장사를 했고, 친절하기로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분이신데 잘해줘 봐야 잘 산다고 연락하는 놈 하나 없다며 웃으셨다.


A와 B 이 두 사람의 한국 정착기가 기대된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오는 날을 대비해 손수건이라도 상시 들고 다녀야겠다.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거나, 곧 출국이라며 비행기 티켓 인쇄를 부탁하러 오는 손님들을 보면 그들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길 바라곤 한다. 그리고 부디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 허투루 날리지 말고 집도 짓고 땅도 사고 풍족한 삶을 살길!




작가의 이전글 식료품점 김너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