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만 29인데 저 취업 가능한가요?

취뽀를 위한 고군분투



나이는 떠오르지 않는 열정적인 연주



프로코피예프


러시아에서 어떻게 이렇게 멋진 예술이 탄생했는지, 여전히 신기하다.
겹겹이 쌓인 양파와 같은 매력.

러시아 사람들이 왜 저토록 예술에 자부심을 갖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러시아 여행은 내게 오래도록 남을 좋은 추억이다.

그곳에서 만난, 나보다 훨씬 어린 학생은 놀라울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에게 직접 시까지 써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고, 각자의 삶이 흘러가면서 연락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저 마음 한편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목요일, 오늘 면세점 면접을 봤다.


그전에 내가 어떻게 면접을 준비해 왔는지 그 과정을 복기하고자 한다.


저번 주 금·토에 걸쳐 회사 정보와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찾아보고 제품을 찾는 사람들의 후기를 읽고 기록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의 큰 틀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한 끝에, 토요일 늦은 저녁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자기소개서에서 나의 캐릭터는 ‘안내자, 고객과 상품을 연결해주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은 기다리겠지 싶었는데, 예상 외로 굉장히 빠르게 연락이 왔다.

월요일에 면접 일정을 조율하고 나니, 그때부터 다시 부담감이 밀려왔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시작해,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이유만 자꾸 떠올렸다. 긍정적 사고가 부정적으로 바뀌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아직 뽑힌 것도 아닌데, 혹시 뽑힌다면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그냥 부딪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그래서 요즘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타고나길 용감한 사람’이다.


면접 전까지 부담만 쌓여서, 폭식하고, 하기 싫고, 낙담하고… 계속 반복됐다.
비로소 어제, 그전까지 모아둔 회사 정보와 자기소개서를 토대로 예상 질문을 만들고 답을 적으며 전체적인 흐름만 외웠다.


드디어 면접 당일이 되었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아마도 호르몬 문제 때문인 듯) 오늘 늦잠을 자 버렸다.

준비하면서 ‘이러다 늦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였다. 휴;;
공채가 아니다 보니 면접 후기도 거의 없어서, 어떤 방식일지 더욱 궁금했다.
매장직이어도 정규직 채용이니 기본적인 틀은 갖추어져 있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지하철에서 준비한 답변을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단 편안했다. 면접관은 두 분이었고, 분위기도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었다.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도 없었다. 다만 기업 면접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분들은 아니라서 그런지, 지원자인 입장에서는 질문이 조금씩 겹치는 느낌이 있어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입사 후 포부를 묻는 질문이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또한 내가 경험해온 다른 회사들은 지원자의 답변에서 더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꼬리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꼬리질문 없이, 시간이 지나 비슷한 질문을 다시 물어보는 패턴이 있었다.
물론 내가 면접관이 아니고, 면접을 수없이 뚫어본 능력자도 아니니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본격적인 면접은 역시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나는 40~50초 길이로 준비한 자기소개를 지원동기와 자연스럽게 엮어 막힘 없이 말했다.
그랬더니 면접관님이 “정말 많이 알아보고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이번 면접 준비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이전 기업 면접들에 비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덜 준비된 상태였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민망했다.

오랜 기간 고시 준비로 공백기가 있어 경력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지만, 그 외에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칭찬들이 곧바로 합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괜히 마음이 들뜨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또, 내가 이것저것 알고 있다고 느끼신 건지 “혹시 준비한 게 더 있으면 말해도 된다”고 하셨고, 말이 막힘없이 이어지다 보니 “범상치 않은 사람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 말에 내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니…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시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했다.

요즘 취준생들은 나보다 훨씬 능력도 뛰어나고, 말도 잘하고, 경험도 많은데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게 바로 한국인의 겸손인가. 칭찬을 받아도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 마음.


면접관님들은 나에게 약간 독특하다는 말도 해주셨다.

"네, 맞습니다. 그런 말 좀 듣는 것 같아요. "

아무래도 내가 좀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스타일이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성 측면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지 물어보셨다.
아무래도 다른 지원자보다 경력이 적으니,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 사람들과 일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왔고(사실인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업무를 할 때도 먼저 다가가서 묻고, 배우고, 열정을 보이려 하기 때문에 잘 지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사례를 하나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보통 면접에서는 갈등 관련 질문은 거의 필수인데, 먼저 꺼내주시지….’


추가적으로 사회성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MBTI를 물으셔서 살짝 당황했다.
MBTI는 그냥 일상 대화 주제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답은 해야 하니 약간은 거짓말을 했다. 아무래도 판매 분야면 E를 선호할 것 같아서 E라고 했는데,
면접관님은 바로 “i 아니에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재빨리 “i도 거의 절반은 나와요”라고 순발력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말하느라 잠깐씩 애먹기도 했다.


내 생각엔, 내향적이라고 해서 조직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인바운드 세일즈나 CS/CX 분야에도 내향인들이 많고, 친화력·배려심 같은 건 내향·외향과는 별개로 그 사람의 됨됨이에서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까지 일할 생각이냐”고 물으셔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이곳에서 능력을 잘 펼쳐서 세일즈 쪽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오래 다닐 생각은 없다. 경력직 연봉이 좀 짜다.

한국에서 월급 200대로 어떻게 살라는 건지 정말 의문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걸 싫어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남과 비교하는 문화에도 이런 낮은 임금이 한몫 하는 것 같다. 노후까지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래서 나 역시 처음부터 공기업이나 회계사 쪽으로 경력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해왔던 거다.
월급이라는 건 결국 그 직업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평가지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각설하고, 면접관들이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는 대략 이렇다.
물론 면접관님들이 하신 말씀을 토대로 내가 해본 사실 및 추측이다.


“이렇게까지 회사 조사 많이 하고 오는 지원자는 처음이다.”
“제품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것 같다.”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한데, 또 은근 조심스럽고 동시에 대범한 면도 있다.”
“약간 웃기기도 하고, 뭔가 독특하다.”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은데, 다만 동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조금 고민하시는 느낌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안 뽑히면 왠지 섭섭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좋게 봐주셨다’는 경험 자체가 내겐 값졌다. 그동안 공기업 준비하면서 회사에 애정도 가지고,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도 늘 떨어졌고, 그럴 때마다 자신감이 조금씩 죽어갔던 나에게 이번 면접은 오랜만에 느껴본 작은 희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한 번의 경험으로 없던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따뜻해지는 정도?


그래도 조금 섭섭했던 점을 말하자면, 서울까지 면접 보러 갔는데 교통비 지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작은 회사도 아니면서, 여기 누가 소금을 이렇게 많이 쳐놨는지 모르겠다.

모니터 앞에서 타닥타닥 일하는 본사 직원들 면접비는 지급하면서 매장직 지원자는 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약간 충격이었다. 나 교통비 적어도 20,000원 기대했단 말이다.



나의 생각은 또 교통비로부터 확장되었다.

한국은 아직 멀었다. 어떻게든 핀란드로 갔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핀란드어 다시 해볼까?!

요즘은 교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말이야, 2013년 내가 핀란드에 푹 빠졌을 땐 핀란드어 교재 같은 건 직구로 영어판 사야 했다. 만약 고등학교 때 내신을 좀 더 탄탄하게 다졌다면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학과를 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문득 든다.

핀란드 총리가 주 4일·6시간 근무제를 제안했다는 소식을 오늘 봤다.
신입생 시절, 글로벌 잉글리쉬 수업에서 교수님께 편지를 쓸 때도 “언젠가 꼭 핀란드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적었었다. 더 나아가 한참 전엔 핀란드인 언니랑 온라인 친구 맺어서 연락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 있다.


끼또스!


여행으로는 북유럽 물가 너무 비싸요.




여튼, 다시 내 루틴을 찾고 또 한 번의 고군분투, 새로운 장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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