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뽀를 위한 고군분투
저번 주까지는 마음 따라 계절을 늦가을 또는 초겨울로 부를 수 있었는데, 오늘 월요일 아침은 무척이나 서늘한 공기에 이부자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가을과 몌별하는 순간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나, 눈앞에 무엇도 보이질 않으니 연말이 참 밉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만일 순리대로 우리에게 헤어짐이 찾아온다면, 우리가 한 살을 얻게 될 때(+)마다 당신들의 존재는 우리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얼마 전 또다시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다.
신기하게도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보이는 것은 나와 여동생뿐이다.
며칠 전에는 할머니의 유품 몇 점이 집으로 왔다. - 손수건, 겨울 코트 같은 손때 묻은 물건들
이제 눈물이 쉽게 나지는 않지만, 아직은 그 유품을 만질 자신이 없다.
나, 그렇게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러하다.
저번 주부터 감정이 요동치니, 잔잔한 음악이 유난히 간절하다.
잔잔하나 멜랑꼴리한 음악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차이코프스키를 알려주었다.
저번 목요일에 면접을 본 세무회계사무소의 결과가 오늘 나왔다.
예상대로 불합격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다행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이번에는 GPT가 아닌 Gemini에게 나에 대한 분석을 맡겨보았다.
“깊은 통찰을 좋아하고, 때로는 과도한 감정 몰입에 주의해야 한다.”
그 말이 꽤 정확해 보였다.
사실 내가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도 그것이었다.
집중력과 이해력은 평범한데, 마음은 늘 깊게 학문을 파고들기를 원했다.
그 간극을 끝내 메우지 못했고, 융통성도 부족했다.
그리고 ‘융통성 발휘’라는 것은 지금도 나에게 익숙치 않은 일이다.
최근의 나는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더 따고, 새로운 툴을 익히는 이 과정 자체가 지겹고 피로하다.
스타트업 공고에서는 종종 ‘직무 상관없이 인턴을 키워 적합한 포지션을 주겠다’거나
‘성장에 미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자유양식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기본적으로 요구한다. 그런 문구에 괜히 열정이 셈 솟다가 바로 마음이 버거워진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쉬운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폭발적 성장의 열정’을 내가 지금 만들어낼 수는 없다.
지금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조금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익, 그리고 과한 스트레스 없이 나를 다질 수 있는 환경이다. 공부도 기초가 탄탄할 때 잘 되듯, 사람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지금은 큰 욕심이 작은 성취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시기다.
어제 식음료로 유명한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매장 정규직 공고였고, 복리후생도 나쁘지 않아 욕심이 났다.
나는 워낙 소심해서 지원하면서도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편이다.
그게 혹시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가려면 벌어먹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도 떳떳해질 테니 커피챗을 통해 얻은 조언을 보며 힘을 내었다.
사람인 이력서를 넣고 메일을 확인하는 일도 늘 두렵다. 내 개인 메일과 연동되어 있어 기업이 내 이력서를 열람했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지원한 회사에서 오늘 이력서를 확인했고, 오후에는 바로 문자가 왔다.
“면접 일정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나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