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졸업논문을 어렵게 마치고 이전부터 계획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 큰맘 먹고 스터디카페 정기권을 끊었다. 열의를 갖고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보며 괜한 경쟁심에 나는 즉흥적인 사람에서 계획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들보다 취업이 늦어지는 만큼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나를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모든 공부가 마무리되고 집에 가는 길은 나에겐 직장인의 퇴근과 별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끝까지 무엇인가를 완수할 힘이 부족했다. 집중력이 약하고 혼자 상상에 빠지는 경우가 잦던 난 사람마다 지닌 집중력이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불편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놈의 졸음은 감수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수면시간을 조정해도,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워도 항상 피곤했다. 학창 시절부터 어찌나 잠이 많던지 교실 맨 뒤 소위 '잠 깨는 책상'에 가 서서 공부를 해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소수의 강철 체력을 제외하고는 많은 학생들은 나와 같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위 아래로 고개를 흔드는 힘 없는 락밴드 일원이었다. (아 참고로 필자는 여고를 졸업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이 졸음의 굴레에 있던 나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나의 쏟아지는 졸음으로 겪는 힘듦을 토로했다.
"나는 식곤증이 심한가 봐. 뭐만 먹으면 바로 잠이 쏟아져. 그리고 왜 이렇게 자주 피곤한지 잠깐 낮잠을 자도 계속 피곤해."
역시 삶에 치여 사는 친구들도 나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도 나처럼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친구들이 공감할 때도 나는 일반 사람들보다 내가 더 유별나다고 생각했지만 타인의 졸음의 정도와 횟수를 파악할 수는 없을 노릇이기에 더 이상 내 상황의 차이를 구별 지어 강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다들 똑같겠거니 하고 웃어넘겼다.
그렇게 오랜 시간 불편함을 감수하여 어찌저찌 대학도 가고 학사 학위도 무사히 땄다. 그러나 취업이 달린 문제에서 이 거대한 장벽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시험을 빨리 끝내 합격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 몸은 나의 머리와 타협하지 않았다.
'도대체 나의 문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그놈의 의지인지 뭔지의 문제인가?'
여느 날처럼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데 성인 ADHD에 대한 영상이 눈에 띄었다. 영상과 함께 댓글을 보니 많은 증상들이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증상들이었다. 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과수면도 ADHD의 증상 중 하나였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 나를 바꿔줄 답을 알게 된 것이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바로 관련 정신과에 예약 문의를 하고 그렇게 초진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조용한 ADHD였다. 즉, 머리의 문제였다. 머리가 불협화음의 원인이었다!
아마 ADHD 증상을 겪는 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 진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내 삶에 변혁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젠 조금 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희망에 꽤 기뻤다. 그리고 여태껏 그 졸음과 싸운 나 자신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러곤 생각했다.
'미리 알았으면 미리 치료했으면 내 삶도 내 주변인들과 비슷하게 흘러갔을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초반 몇 개월 동안은 자주 내원했다. 다행히 난 약의 부작용이 거의 없었기에 일찍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약 덕분에 집중력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거지 같던 졸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문제가 종결되었고, 난 이제 내 능력을 펼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나는 예상치 못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ADHD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된 문제가 더 남아있었다.
우울증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우울증은 단지 하나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그런 낯선 대상.
사실 여전히 헷갈린다. 정말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