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닭국
일요일 낮, 나는 친구들과 마을 중간에 있는 비탈진 길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을 중앙길은 마을 꼭대기에서 아래 큰길까지 구불거리며 이어져 있다. 이 길은 마을 오물들을 모아 아래로 내려보내는 도랑 위에 보도블록을 깔아서 만든 길로 다른 길보다 넓은 편이다. 아이들은 이 길을 놀이터로 사용하였는데, 약 45도 경사 길이여서 공을 아래로 세차게 구르게 했다. 공 잘 차는 남자아이가 공을 힘차게 차올린다. 나머지 아이들은 층층이 서서 그 공을 주우러 우르르 뛰어다녔다. 그러다 그만, 공을 놓쳐 데굴데굴 구르게 되면 발 빠른 아이가 아래로 잽싸게 뛰어가 한 발로 낚아챈 후, 힘껏 위로 다시 차올린다. 그 발놀림이 너무나 멋졌다. ‘저 친구는 커서 축구 선수 해도 되겠다.’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그만, 차올린 공을 놓쳤다.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공이 길옆에 있는 닭 키우는 집 옆 간에 떨어졌다. 그곳에는 큰 닭과 작은 닭들이 놀고 있었다. 어디든 그렇듯이, 그 놀이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수비역할로 공을 주우러 다니는 게 예의다.
나는 공을 줍기 위해 손을 휘~저으며 닭들에게 “저리 가~.”라고 말하고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아뿔싸~! 청년닭쯤 돼 보이는 닭이 이리저리 도망가다 그만 내 발밑으로 들어왔다. 발밑에 무엇인가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과 너무 무서워 발아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온몸이 움찔거린다.
그 뒤, 나는 다른 곳에서 여자친구들이랑 노느라 이전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갈 때쯤, 나는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낮에 있었던 그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노는데 정신이 팔리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놓고 부모님들이 온 마을을 향해 “누구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야 정신이 돌아왔다. 마을 구석구석 노는 아이들 귀에 빈틈없이 들려야 했기에 확성기를 틀어 놓은 것 마냥,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위험을 감지한 알락꼬리원숭이처럼 고개를 쳐들고는 자기 이름이 여러 번 호명되어야 마지못해 일어나 집으로 하나둘씩 들어갔다.
나는 풀 죽은 모습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집에 가까워지자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기분이 좋아졌다.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바로 이어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조용히 벗었다. 나는 앉은 채로 엉덩이를 끌고 방 안으로 살살 낮은 자세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미 둥근 알루미늄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못 들고 상 밑의 풍경만 바라보며 비워진 틈을 찾아가 앉았다. 그날따라 밥상의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내 앞에 밥이 놓이고서야 고개를 들어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았다. 구수한 냄새가 닭국 냄새였다. 오랜만에 닭국이 상에 올라와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엄마의 조용한 몸짓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다들 오랜만에 올라온 닭국에 그릇이 달그락 소리 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배가 부르니 걱정은 오간데 없고 궁금증이 나와 “엄마 오늘 어쩐 일로 닭국을 했어요?”라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순간 닭국이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이~···, 이유인즉, 내가 낮에 사고 친 그 닭! 주인이 우연히 밖에 나와 애지중지 키우던 닭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고, 겁에 질린 아이들을 있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누가 닭을 죽였노?”라며 다그쳐 물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모르쇠로 고개 돌려가며 발뺌하다가 아주머니의 호통에 무서워 내가 그랬노라고 했단다. 그 아주머니는 그 길로 죽은 닭을 들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 왔다. 마침 휴일이라 집에 계신 엄마얼굴에 그 닭을 들이밀고는 “당신 딸이 우리 닭을 밟아 죽였다는데 이제 이 닭을 우짤 거요? 고마~당신이 사소!”라고 했다. 엄마는 두말도 못하고 할 수 없이 계획에도 없는 닭을 사서 저녁에 닭국을 끓이게 되었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들으며 죄지은 사람이 되어 무릎 꿇고 울상이 되어 있었지만, 집안 분위기는 이상하게 따뜻해져 있었다. 내 덕분이라고 하기에 이상하지만, 속상한 엄마 말고는 다들 얼굴이 뽂닥그리~부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