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속고 속임.
연휴 마지막 날
오전 반신욕을 마치고, 이제 결전의 시간.
더는 미루고 싶지 않고, 미룰 수도 없다.
깨끗해지기 위해 더럽혀지고, 더럽혀지기 위해 깨끗해지는 것.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반복.
하자, 설거지.
속음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시절, 간혹 집안일을 돕겠다며 설거지를 하면 어머니께서 극찬하셨다. 뒷정리까지 말끔히 하는 날에는 아버지까지 함께 나서 칭찬하셨다.
함정이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설거지는 집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의 몫이라고, 내가 설거지의 권위자라고 으스대기를 수십 차례 하고도 한참 지난 뒤에 깨달았다.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 ‘지명’이었음을...
속임
언젠가 부모님 댁에서 모처럼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그때의 설거지 칭찬은 자연스러운 업무 분장을 위한 계획 아니었는지 여쭤봤다. 그런 부분도 없잖았지만, 정말 잘해서 그랬던 것이니 오해 말라고 답하시는 부모님.
“역시, 나의 설거지 솜씨는!”이라 너스레를 떨며 즐거운 설거지를 자처했다.
이제는 나의 작전.
앞으로,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