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과 상함.

시간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by stay gold



언젠가 상한 굴을 먹고 심하게 탈이 나 응급실까지 가야 했던 지인이 있었다. 농담하는 것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나는, 퇴원 후 조금 나아진 지인에게 ‘숙성 굴 애호가‘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상한 굴을 기어이 먹고 탈이 난 그를 ‘기념’했다.



1. 다름.

아무렇게나 두어 상한 것과 적절한 조건을 지켜가며 숙성한 것은 다르다. 재료가 같아도 결과는 전혀 다르다. 숙성된 것에서는 맛의 깊이나 풍미, 경우에 따라 이상함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독특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한 것은 상한 것뿐. 맛과 향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풍긴다.



2. 시간.

’시간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잔뜩 쌓은 종이 더미보다는 다이아몬드 하나가 더 가치 있다. 종이는 쌓아봐야 종이 더미가 될 뿐이고, 다이아몬드는 한 개만 있어도 다이아몬드. 종이 더미처럼 쌓인 시간보다, 다이아몬드 같은 찰나가 더 값질 수 있다.


단순한 회상이 아닌, ‘이 생활 몇 년인데~’, ‘내 나이가...’등 시간 더미를 통해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려는 이를 보면 현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실 유무를 차치하고) 시간의 총합을 끌어다 써야 하는 것부터 의아하지만, 무엇보다 ‘왜 굳이 현재의 스스로를 증명하려 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정말 그런 존재라면,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입증된다. 갱신한 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갈 때 신분증은 필요 없다. 이미 그곳에 내 신분증이 있으니.


솜씨 좋은 목수는 ‘솜씨 좋은 목수는 이러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굳이 할 필요 없다. 이미 솜씨를 아는 이들이 있고, 그런 이들이 없더라도 자신의 솜씨를 보여주면 될 일이다. ‘솜씨 좋은 목수는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라고 주장하느라 굳이 애쓸 필요 없다.



3. 왜?

궁금한 것은, ‘왜 그럴까?’이다.

단순한 추억의 회상이 아니라 과거로 현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현재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느냐는 것.


사자는 자신이 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흥’하고 소리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사자의 포효로 듣는 것이다. 하지만, 사자의 탈을 쓰고 진짜 사자처럼 보이고 싶다면 매일 ‘어흥’하고 소리 내고 싶을 것이다. 아니, 소리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믿어주지 않을 테니, 자신이 흉내 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반복할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사자탈을 쓰더라도 진짜 사자가 아님을 사람들이, 아니, 적어도 자신이 가장 잘 느낄 테니, ‘어흥’이라고 소리 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이유로, 상한 것은 숙성된 것으로 보이고 싶을 때 시간을 이야기할 것이다. 아니, 시간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진짜 숙성된 것이 아님을 사람들이, 아니, 적어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느낄 테니.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4. 증명.

증명하지 않음으로 증명되는 것.

그것이 정말 나라면, 우리라면, 굳이 증명할 필요 없다. 담백하게 현재의 나를 보여주면 된다. 사실과 진실만큼 설득력 있는 주장은 없다. 현재의 담백함과는 동떨어진 시간 더미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사실과 진실이 아닌 세상에서의 일일 것.




시간은

시간은 숙성의 재료이기도 하지만, 상하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숙성된 시간은 굳이 입증할 필요 없다. 현재의 맛과 향으로 이미 드러나므로.


나의 현재가 나의 과거를 입증한다.

나의 과거로 나의 현재가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여담.

숙성하려면 그 재료부터 중요하다.

이온 음료는 썩는다...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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