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가 포기인가
콘클린, 올 아메리칸
30만 원 전후로 저가형과 중간 즈음의 만년필로 나뉘는 것을 생각하면 꽤 저렴한 만년필이다.
질감이나 색상 등 디자인, 파츠들의 퀄리티와 성능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이며 나아가 캐릭터가 분명한 만년필, 혹은 조건 중 조금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어느 하나 분명한 강점이 있는 만년필을 '좋은 만년필'이라고들 한다.
30만 원 이하의 범위에서 모든 것을 갖춘 좋은 만년필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4k ~ 21k인 금닙 가격, 몸통 중간이나 뚜껑에 달려있는 장식 가격, 일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제작 방식, 만듦새를 최종 확인하여 적절한 상태의 만년필만 판매하는 방식 등 뛰어난 만년필의 여러 요소를 모두 갖추려면 30만 원 이하로는 단가가 맞지 않을 것. 따라서, 30만 원으로 완성도 높은 만년필을 구매하려는 것은 무리다. 소중한 30만 원이지만, 멋진 만년필을 구매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10만 원 ~ 20만 원 대의 입문 등급 만년필을 선택할 때에는 '좋음'의 기준을 살짝 수정할 필요가 있다. 완전무결이 아닌 선택과 집중으로 그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 바디의 모양새가 예쁘니 닙의 퀄리티는 일부 포기하거나, 닙의 느낌이 훌륭하니 바디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은 포기하거나, 파츠가 훌륭하니 좋은 만년필 특유의 아우라는 포기하거나.
모든 것을 다 갖춘 만년필은 비싸다. 저렴한 가격대에서 그런 만년필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어느 한두 가지가 유독 특출난 만년필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특출난 부분이 내 마음에 들면 나에게 좋은 만년필, 나만의 좋은 만년필이 될 수 있다. 일부를 포기한 것으로 느끼느냐 일부에 집중한 것으로 생각하느냐. 해석은 자신의 몫.
콘클린의 All American은 부드러운 필기감에 집중한 것일 수도, 만년필 특유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포기한 것일 수도.
필사한 글은 에피쿠로스의 편지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