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문제는 비율이야

너도 책임, 나도 책임

by stay gold


A의 입장은 이렇다.


음식점을 운영 중으로 가뜩이나 힘든 요즘, 음식점 유리문을 나서 약 10여 미터 앞에 있는 정문에 설치된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B의 손해를 책임지는 것은 억울하다. 길에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걷다가 넘어져놓고 배상하라 생떼를 쓰는 것은 어이없다.



B의 입장은 이렇다.

넘어진 사람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출입을 위해 만들어진 길과 계단이 통념상 마땅히 갖춰야 할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것이 음식점 운영자의 관리 소홀 때문이라면, 책임 비율에 따라 배상함이 타당하다. 마치 자동차 사고와 같다. 과실이 있다면, 그 비율에 따라 배상함이 옳다.



기초 사실은 이렇다.

사고가 발생한 계단은 A의 관리하에 있는 시설물로, 미끄러운 재질로 되어 있으며, 미끄럼 방지 패드는 부착되어 있지 않음. 사고 당일 비가 와서 더욱 미끄러운 상태였는데, 비를 막아주는 천막과 고무 깔개는 한 명만 이용할 수 있는 폭으로 계단 직전까지 설치됨.



나는 전형적인 B 방식의 인간.


사고 발생에는 B의 책임이 있지만, A에게도 위험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 자동차 사고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 무면허 또는 음주 운전을 했다 하더라도 다른 이가 추돌했다면, 무면허나 음주에 대한 책임과는 별개로 추돌한 이의 책임에 대하여도 따지는 것이 타당하다(그리고, 현실적이다).


사실, 위 사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업주 A의 책임을 손해의 60%로 인정했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액 약 3,800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 지급, 소송비용의 80% 부담하라 결정.




음식점 운영자 A의 힘든 형편을 생각할 수 있다면, B가 입은 고통과 피해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


A 입장에서는 멀쩡한 길을 걷던 B가 미끄러진 것이니 억울하다 할 수 있지만, B 입장에서는 멀쩡해야 할 것을 멀쩡하지 않게 방치한 A의 관리 소홀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일 수 있다. 길, 계단이 멀쩡했다면 넘어진 이의 생떼일 테지만, 멀쩡하지 않았다 볼 수 있다면 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은 업주의 생떼일 수 있다.


누군가가, 길에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로 보이는 것이 뿌려져 있어 그걸 밟고 넘어졌다며 배상받을 수 있냐는 취지로 남긴 인터넷 게시글에 달려있던 무수히 많은 댓글, ”넘어져놓고 왜 남 탓?“을 떠올리며.


B의 책임이 있다고 하여 곧 A의 책임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안에서 현실의 판단은 비교적 이성적이고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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