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라는 종교

참여자의 신뢰

by stay gold


비트코인을 믿는 이들과의 대화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1. 비트코인(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 내부적 특성.

사토시라는 개인 혹은 집단 혹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만든, 해킹 불가능하며 공급량이 고정된 데이터. 국가 기관에서 발행량을 결정하지 않음.


2. 비트코인 외부적 특성.

참여자들의 신뢰가 쌓이면 고정된 공급량은 희소가치로 느낄 수 있음.

참여자들의 신뢰가 쌓이면 일부 화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음.

참여자들의 신뢰가 쌓이면 안전 자산으로 평가될 수 있음.

참여자들의 신뢰가 쌓이면 기타 등등.


비트코인은, 나아가 암호화폐(나는 가상화폐라 칭하는 쪽이지만)의 내부적 특성은 단어 그대로 특성에 불과하다. 기술은 흥미롭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따라서 미래의 안전자산”이라 말하는 것은 흡사 ”엔진이 있으니 이건 자동차”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여자들의 신뢰가 쌓이면”은 가상화폐의 실질적 효용의 필요조건이다(이 조건을 부정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비싸게 사는 다수를 기대하는 망상에 가깝다).


가상화폐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합의가 있어야 그 가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소위 비트코이너들 중 일부는 2에 대하여, 그러니까 이것이 다수의 합의까지 이를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 1에 대한 답을 반복한다. “비트코인은 해킹이 불가능하고, 탈중앙화가 핵심 가치이고, 블라블라”라고 답한다. 비트코인의 특성은 잘 알겠는데, 그걸 사람들이 정말 이용하겠느냐는 질문에 “가격이 높음”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현실에서의 효용은 십수 년째 제자리인데 가격만 폭등한다면 거품이 상당하다 의심할 법도 한데, “가격이 높으니 시장의 인정을 받는 것”이라는 주객이 전도된 답을 내놓는다.


현실에서 효용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격이 높은 것을 보라며, 가격이 높은 이유는 효용이 있기 때문이라며 쳇바퀴를 돌린다. 현실에서의 효용이라는 것이 지난 시간 입증됐느냐, 현재 입증되고 있느냐는 질문, 즉 2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는 다시 비트코인의 내부적 특성, 즉 1번을 답한다. 꼬리를 물고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


비트코인에 주목하게 만들었던 본래의 가치,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적 동력은 이미 상실했다. 지나치게 유동적인 값이라는 위험이 해소되어 생활에 스며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존 시스템으로의 편입을 기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화폐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게임 체인저라는 본래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훼손해야 한다.


”값“을 이유로 철학 대신 기존 시스템 내의 안전, 안정 자산이 되길 바라는 참여자들이 많아지며, 비트코인의 내재적 특성은 혁명적 가치에서 기존 시스템이 잘 다루고 길들여야 할 것으로 전락했다. 본래의 목표와 참여자들의 기대가 대척점에 있다. 딜레마다.


이제 남은 것은 새 시대에 통용될 미래의 화폐라는 환상이 아니라, 이것이 장기적인 안정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는 현실. 즉, 2항이 남았다.


따라서, 질문해야 할 것은 2에 대한 것들.


비트코인은 이미 신뢰가 쌓인, 제도권에서 사용 중인 기존의 화폐 및 다양한 안전자산의 일부를 대체할 정도로 다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다수가 아닌 소수의 도박 칩으로 활용되다가 폐기되는 것은 아닐까?

발행량이 정해져 있고, 그중 상당수를 보유한 기관과 개인이 있으며, 따라서 다수로의 탈중앙화가 아니라 소수의 보유량 많은 기관과 개인이 새로운 중앙이 될 수 있는 ‘중앙 변동’ 가상화폐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소수의 집단, 예컨대 사토시와 그 외 다량 보유 기관이 한순간에 익절하는 것을 제재할 근거가 없는데, 이런 위험을 장기적으로 감수할 필요가 있는가?


재미난 점은, 이미 말한 것처럼, 대개 이런 2항에 대한 질문의 답이 1항이라는 것. 활용과 안착을 묻는 질문에 내재적 특성을 답한다는 것. 그 내재적 특성이 사람들에게 먹히겠냐 묻는 것인데, ”비트코인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제자리만 뱅뱅 돈다.


사실, 답은 뻔하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믿는 이들의 의견 중 가장 타당하다 생각하는 부분인데, “종이 화폐도, 금도, 다른 여러 자산들도 신뢰가 바탕이다.”라는 너무나 명쾌한 답.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뢰를 얻으면 살아남을 것.


이제 생각할 것은, 기존의 화폐 및 다른 자산들과 비트코인 및 가상화폐들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다수의 사용자들이 신뢰를 갖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 그리고 이것은, 말뿐인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제도권으로의 안착을 희망하는 새로운 종류의 화폐라는 실체에 대한 검토이므로, 화폐경제학의 범주에서 다루기에 별 무리 없을 것이다(이것이, 장밋빛 미래를 그린 경전과도 같은 비트코인 인기서적을 보기 전에, 그래서 “컬트적 맹신”을 갖기 전에, 경제학 원론이라도 읽으면 좋을 이유).


달러도, 금도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사용 중인 것은 맞지만, 비트코인은 사용자의 숫자도, 가치를 보장하는 근거도 완전히 다르다. 같지 않아서 문제다.


제도와 중앙으로부터의 독립이 철학이었지만 제도권 안착으로 인한 안정성 확보가 가치의 상승요인이며 중앙이 이동한 것에 불과한 자기모순적인 가상화폐가, 가격이 올랐을 뿐 실제 활용은 나아지지 않은 비트코인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굴러온 돌이 될 정도의 동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위 “고래들”이 손 털고 나가며 갑자기 폭락 후 장기적으로 폐기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고, 가격에 대한 믿음이 신앙처럼 번져 결국 다수의 신뢰를 확보하고 장기적 자산으로 안착할 수도 있을 것. 나는 전자의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예상하지만, 신앙의 확산을 위해 애쓰는 이들의 노력이 통할 수도 있다. 확률은 희박하지만, 쥐가 뒷걸음질 치다 소를 잡을 수도 있다. 나아가, 폐기되든 안착하든 상관없이 그 사이에 수익을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리고 과거에 비트코인이 어떠한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평가는 믿음과 예언이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여야 할 것. 종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그러니까 이 글은, 믿음을 근거로 “코인의 가격”을 이해하는 글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가상화폐”를 말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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