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추억이라기보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다. 지금은 수원에 거주하지만 외국에 나가기 전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복잡한 서울에서 나는 자연스레 버스와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다. 그때 상도동 보라매공원 쪽에 살았는데, 어느 날 종로 쪽에 약속이 있어 버스에 탑승. 자리가 없어 어느 멋있어 보이는 여자분 앞에 섰다. 그런데 타자마자 버스가 급정차를 했다. 손잡이를 잡고 있었지만 심하게 흔들리다 보니 내 앞에 앉아있는 여성분의 발을 밟고 말았다. 그때 힐을 신고 있었는데 밟힌 여성분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정말 미안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난 너무너무 죄송하다며 연신 굽신 거리며 사과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성분이 사과를 계속해도 계속 나를 째려보며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힐로 밟았으니 얼마나 아플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라매공원에서 시작해 한강 다리를 건널 때 까지도 그 여인은 나에 대한 분노를 그칠 줄 몰랐다. 이쯤 되면 나도 이제 슬슬 지칠 때가 된 것 아닌가? 너무 미안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사과를 했으면 그만해야지 이 사람아!!!
이제 나도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아이 C 짜증 나!
그만큼 미안하다고 했으면 그만해야지
도대체 몇 번을 사과해야 해!!
재수 없어 진짜
아유.. 확 그냥...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에겐 확실히 들릴 정도였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확 쪼그라들었다. 험악한 조폭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당황하더니 내 얼굴도 못 쳐다보고 안절부절못했다.
뭐지? 이 낯선 쾌감?
내 입에서 이런 욕이 나오다니... 나는 평소에 욕을 안 한다, 정말!!!
언성만 높여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싸움도 잘 못한다.
오히려 집에 돌아와 밤에 잠 못 들고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조리 있게 내 입장을 설명하지 못한 때 늦은 후회만 하는 편이다.
물건 값도 못 깎을뿐더러,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교환할 때도 할 말을 몇 번씩 연습하고 간다.
하지만 내 내면엔 이런 것들이 꿈틀대고 있던 것인가? ㅋㅋㅋ
그렇게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할 때는 경멸하며 바라보더니, 세게 나가니 깨갱거리는 그 여인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사람은 친절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