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엔 할머니가 없다.
여기엔 할머니가 없다.
할머니는 없고,할머니의 집만 남았다.
지금은 이름 조차도 기억 안나는 친구들이 살았다.
할머니 집을 기준으로 대각선으로 종종걸음으로 가면 만날 수 있었던 동네 언니와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었던 그 집 동생이 있었다.
그때는 전혀 생각 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집은 초가집이였던거 같다.
현재를 살고 있는 서른 후반의 나이의 기억이라면 남들이 거짓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정말이였고 사실이였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주말에 들렀을때 할머니는 그집에 살았던 첫째 언니는 도시에서 미용을 한다고 했고 둘째 언니는 촌스러웠던 이름을 바꿨고 취직을 해서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더이상 들은 이야기는 없었던것 같다.
그땐 아이들이라고 해봤자 고작 10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몰려 다니곤 했는데,겨울이 되면 그 아이들이 비료 포대에 짚단을 넣고 타던 동산엔 게이트볼장이 들어섰고,그 아이들이 여름을 나던 마을의 냇가는 천천히 말라가더니 끝내는 땅이 되었다.
밭에 갔던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 쯤 되면 마을엔 자연스럽게 집집마다 집을 데우고 따뜻한 저녁을 짓던 연기들이 피어 올랐는데 지금은 주말이 되어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내려와 고기를 구워야 희미한 연기라도 구경 할 수 있게 됐다.
옆 집 할머니는 자주 우리집에 놀러 오시곤 했는데 어느날은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못 알아보셨고,이내 집을 떠나 아들집으로 가셨다가,몇 해 후에 돌아가셨다. 이후에도 몇년을 방치 되었던 그 집은 우리집 담벼락까지 무너진다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터만 남기고 모두 허물어버렸다.
집이 있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들이 놀던 냇가가 있었던 흔적,그 시대에 어색하게 초가집이 있었던 흔적,옆 집이 있었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내 기억에 있을 뿐.
기억이라는건 그렇게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어떤 것이다.
대단한 서사가 있지도 않았던 그 기억들은,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나선 길 위에 문득 피어올라 마치 그때로 돌아 간 것처럼 마을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기억일지,추억일지 모를 것들이 할머니 호미질 한번에 주렁 주렁 딸려 나오던 감자처럼 한참을 주렁 주렁 달려나왔다.
할머니집은 어느날부터인가 우리집이 되어 있었고
땅은 놀리는게 아니라며 시작한 농사는 어느새 할머니가 계셨을 때처럼 벼,고추,양파를 필두로 콩,깨 등등 시기 적절하게 나고 있었다.
뽀얗던 엄마의 팔이며 얼굴이며 목덜미에 기미 꽃이 피었고 여름엔 옷과 몸의 경계가 뚜렷할 정도 그을러졌다.
늙은 노인 홀로 살다 떠난 집에는 이렇듯 아들과 며느리가 살아간다. 늙은 노인이 쓰던 초라한 세간살이를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 쓰며 그녀의 부재를 메우며 산다. 그래서 동네는 할머니가 살아계셨던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껏 남아있는 것 보다 없는게 훨씬 많은데도 전혀 어색한 구석이 없다.
누군가가 사그라들고 다시 피어나는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걸 알아가는 것.
나는 아직 여기 있으므로 누군가의 부재와 누군가의 탄생을 함께 한다.
나의 할머니집이었던 곳이,내 아이의 할머니집이 되었다.
밭 일을 하고 돌아오던 할머니가 보일때까지 길에서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그곳에서 아기띠를 하고 서성이며 아이의 달콤한 낮잠을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 되었다는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