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모든 게 멈췄던 어느 봄,
두 아이와 함께 아파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해보며 지냈다.
쿠팡으로 잔뜩 시킨 그림 그리기, 만들기, 스티커북, 물감 놀이, 보드게임,
베란다에 작은 풀장을 펼치고, 욕실에서는 목욕 비눗놀이까지 했다.
아이들은 해맑았지만, 나는 점점 숨이 막혀 갔다.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을 틔울 ‘어딘가’가 필요했다.
차를 타고 무작정 드라이브를 나섰고,
그러다 보면 늘 도착하게 되는 한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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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집을 ‘묵호집’이라 부른다.
남편의 어린 시절이 눅진하게 배어 있는 집,
초등학생이었던 그가 자라 결혼 전까지 살던 오래된 주택.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망가진다.”
어르신들의 말을 따라 결혼 후에도 남편은 틈틈이 들렀지만,
그럼에도 집은 점점 비어 갔다.
어느 순간, 그 집은 정말 ‘빈 집’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우리는 주말마다 그 빈 집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숨 쉬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집은 우리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묵호집의 빨간 대문을 열면 아주 작은 마당이 나온다.
오래되어 여기저기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바닥.
남편과 나는 빨간 벽돌을 사다가 하나씩 깔며 그 단차를 맞춰 나갔다.
페인트가 다 벗겨진 담벼락에도 붓질을 몇 번씩 하며 색을 입혔다.
시장에서 예쁜 꽃을 사다 심고, 작은 화단도 만들었다.
화단 가꾸기에 푹 빠지게 된 건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주말엔 좀 쉬고 싶은데…” 하고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어느새 한 손엔 페인트 붓이 들려 있었다.
툴툴대면서도 결국 다 해주는 사람.
그런 식으로 우리는 함께 천천히 이 집을 고쳐 나갔다.
좁은 마당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작은 놀이터였다.
테이블을 내어 주면 그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비눗방울을 불고, 돗자리를 펴 소풍 온 듯 놀기도 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마당 한가운데서
우리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래된 담벼락은 이상하게도 우리를 가두기보다 감싸 주는 느낌이었다.
작은 운동장이 된 그 마당은,
아이들에게는 자유를, 우리에겐 여백을 주었다.
“우와, 주택 있으셔서 부러워요.”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묵호집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예쁜 주택이 아니다.
엄청 오래된 집이고, 손볼 곳은 끝이 없으며,
누군가를 초대해 자랑할 수 있는 집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네 식구가 남 눈치 보지 않고 되는 대로 놀다 가는 곳.
매일 사는 집이 아니기에, 주말마다 다시 찾는 그 집의 풍경은 늘 다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곳이 내가 알던 마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름 모를 풀과 꽃, 잡초들이 내 키만큼 자라고,
지난주에 봤던 거미는 살이 포동포동해져 있고,
주중에 내린 비와 바람은 마당을 초토화시켜 놓았다.
빨간 벽돌 사이로는 버섯까지 자란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하면서도 잡초와 오전 내내 씨름하고,
진이 빠진 채 평상에 누워 남편에게 투덜거린다.
“나는 아파트, 교습소, 묵호집 청소부야!”
그러면 남편은 말없이 초콜릿 한 조각과 커피 한 모금을 내민다.
날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벼락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검정과 갈색이 뒤섞인 얼룩무늬,
얼굴 중앙에 선명한 검정 털이 있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아이였다.
우리는 놀라기는커녕 반사적으로 외쳤다.
“먀아아아~오오오옹!”
아기 고양이 둘과 아줌마 고양이 한 마리처럼,
딸들과 나는 그 아이를 향해 고양이 소리를 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도 갑자기 일어났다.
“먀옹!”
이제 아저씨 고양이까지 인사한다.
고양이 입장에선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기다리게 되었다.
주말이 되어 묵호집에 도착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골목을 울리면
그 아이는 어디선가 툭, 얼굴을 내민다.
하얀 담벼락 위에서 식빵처럼 웅크리고,
골골골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우리 가족은 어느새 마트에 가면
그 아이의 밥과 간식, 고양이 낚싯대까지 사게 되었다.
날카로운 인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뱃살을 드러내고 뒹굴며,
그 뱃살을 내어줄 만큼 마음을 열어 주었다.
꽃 화단 위에 쉬를 할 때면
“안 돼~! 꽃들이 죽을 수도 있어.” 하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영역 표시하나 봐.” 하며 웃는다.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난다.
그래, 여긴 너의 마당이야.
너에게는 내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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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산 이후 생긴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지만,
가끔씩 이렇게 우리를 기억하고
놀러 와 주는 그녀가 참 고맙고 소중하다.
그녀는 나처럼 꽃을 좋아한다.
내가 심어 놓은 꽃들을 돌며 향기를 맡는 모습을 보면
안 반할 수가 없다.
동백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볼 때면
나는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 눈빛, 그 존재감,
그리고 익숙한 식빵 자세.
주말마다 잠깐 스쳐 가는 인연.
하지만 마음을 흔들기엔 충분한 존재.
우리가 묵호집에 머무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는 우리의 고양이다.
그녀의 이름은 ‘떼껄룩’이다.
Take a 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