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의 끝, 다시 시작

by 제난희



오전 11시 20분.

집에 캡슐 커피 머신이 있지만, 사놓은 캡슐이 없다. 대신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팔팔 끓는 소리가 들리면, 포트는 똑똑하게 75도라고 알려준다. 나는 천천히 물을 부어 드립 커피를 내린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 순간의 커피 냄새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식탁을 정리하고, 방에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수첩 두 권, 잘 나오는 펜, 아이패드를 챙겨 다시 식탁에 앉는다. 글을 쓰는 시간이다.


거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새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엔 시끄럽기만 하던 아파트 광장이 가장 조용해지는 시간.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고, 출근 러시가 끝난 아파트는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책장을 넘긴다. 마음에 닿는 문장은 수첩에 옮겨 적으며 천천히 읽는다. 그렇게 가볍게 달궈진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글을 타고나게 잘 쓰는 사람도, 오래 쓴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려 한다. 정해진 시간에 앉고, 조금씩 써 내려간다.

그러다 문득, 에세이를 쓰던 손이 어느새 소설로 넘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그냥, 어쩌다, 그렇게 적어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고,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를 흘려보냈다.


글을 다 쓰고, 퇴고를 하고, 마지막이라 믿었던 퇴고를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브런치에 올리는 순간,

“끝—!” 나의 목소리와 함께 엔터를 눌렀다.


왜 그랬을까? 어쩌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걸까?

이미 글은 올라간 뒤였다.

심장이 두근두근, 후련함 반, 끝냈다는 뿌듯함 반으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했고, 며칠을 내리 잤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운동을 했고, 청소를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정돈된 거실을 바라보며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었다. 출근도 했다.


며칠은 오래된 습관대로, 그저 몸이 가는 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머리를 써서 그런가, 머리는 며칠째 파업 중이었다.

나는 그런 내 몸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쉬는 거라 생각했다.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아이패드는 주인을 잃었다.

“혹시, 계속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 쓰게 되면 어쩌지?”


소설을 끝내고 나니 에세이 이야기가 시시해 보일까 봐,

그렇다고 갑자기 또 다른 소설을 써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나는 글 앞으로 걸음을 늦췄다.


그러다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과제물을 혼신의 힘으로 완성한 뒤, 과방 소파에 널브러져 잠들던 날들.

그때도 일단 끝냈다는 안도감, 잠깐의 성취감과 기대감 사이에서

하나의 작업을 끝내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던 시간이 있었다.


첫 소설은 나에게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써댔고,

베테랑처럼 유연하게 쓰지 못했다.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날것의 글이었지만,

새로운 장르에 겁 없이 덤벼든 나를, 나는 잠시 동안 응원했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다듬고, 또 쓰고, 또 다듬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그저, 그 과정에 조금 더 능숙해지고, 유연해지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의 첫 소설은, 어설픈 아마추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었다.

발행한 글은 끝났다. 부족하다면 언제든 다시 퇴고하면 된다.

하지만, 날것도 좋다.

이제는 새로운 글을 시작해야 한다.


오전 11시 20분.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고, 나를 달군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열어 무엇이든 적어본다.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렵지만,

시작하고 나면 멈출 수 없다.

일단 제멋대로 이것저것 적는다.

다시 고치면 되니까.


노력은,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쓰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애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