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터치

by 제난희

“여보, 날씨 좋다. 나가자.”

“그래? 날씨 좋아?”


남편은 이미 새벽에 자전거도 타고, 헬스도 다녀온 사람.

오늘의 기상청, 나의 신뢰 1위는 바로 남편이다.


나는 아직 침대에서 기어나오지도 않았고, 커튼도 열지 않았는데,

남편은 벌써 빵도 굽고, 달토(달걀토마토볶음)까지 만들어 아침상을 차려 부르고 있다.


아이들은 조용히 책상에 앉아 만들기 삼매경.

나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바다 갈까?”

“싫은데~”

“주말이잖아~ 집에 있자~”

“그래, 그러자! 엄마~”


첫째가 싫다고 하자, 둘째도 언니 편에 서서 손을 들어준다.

질 수 없지.


“의사 선생님이 너 햇빛 좀 보라 하셨어!!!”


선생님까지 호출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그걸 본 남편, 무심하게 한마디.

“아, 가야 해.”


무뚝뚝하지만, 확실한 내 편.


그러자 첫째가 외친다.

“둘이 데이트해!”


질 수 없지.

“고은아, 손 좀 줘봐.”

“응? 왜?”


은이의 손바닥 위에, 나는 조심스럽게 ‘아무것도 없는’ 주먹을 올려둔다.

“엄마, 아무것도 없는데? 이게 뭐야?”

“눈치. 눈치 좀 챙기라고!”


“아~ 진짜 뭐야~!! ㅋㅋㅋ”


첫째와 둘째는 오늘도 못 이긴 척,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승리. 바다로 출발!


이렇게 화창한 날, 바닷가 마을에 산다는 건 축복이다.

가는 길에 김밥 사고, 커피 사고, 음료수까지 사 들고

15분만 달리면 바다.


도착하자마자 텐트 설치, 캠핑 의자 세팅, 점심 한 그릇 뚝딱.

아이들은 밥 먹자마자, “어디 모래라도 도망가냐”는 듯

허겁지겁 뛰쳐나가 파도에 첨벙, 모래 위에 풍덩!


“엄마, 나 바지 젖어도 돼요?”

“엄마, 수영복 가져왔어요?”


…아까 “주말이잖아~ 집에 있자” 하던 아이들, 어디 갔죠?


나는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책을 펴고,

파도 소리 + 아이들 웃음소리 + 이 순간 = 평화.


“어디 멀리 갈 필요가 없네.”

“그러게. 도시 사람들은 주말에 여기 오고 싶어서 난리라던데,

우리는 진짜 이럴 때 감사히 즐겨야 해!”

“옳소!”


조용하고 한적한 이 계절의 바다.

조금 더 더워지고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지금 이 자리는 조개구이 포차들이 점령해버릴 테니,

지금, 이 순간 즐겨야 한다. 인생은 타이밍!


옆 텐트는 인스타 광고에서 본 원터치 텐트.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도 원터치 하나 사자~ 항상 텐트 치는 거 힘들잖아.

이렇게 가볍게 나올 땐, 원터치도 괜찮을 듯!”


“원터치, 투터치, 쓰리터치, 포터치, 파이브터치, 식스터치…”

“뭐 하는 거야?”

“터치가 계속 들어가는데?”

“…아! 뭐야!! ㅋㅋㅋㅋ”

“나인터치인데?”

“와 진짜 텐트 안 사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지금 텐트 치는 거랑 비슷하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기긴 왜 또 저렇게 웃긴 거야. 정말!


한참을 웃고,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나니

급 출출해진다.


“엄마! 간식 있어요?”


‘역시 너희들은 내 딸들이 맞구나.

엄마랑 배꼽시계가 똑같네.’


남편은 아이스박스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수박이다!”


시원한 바닷가에서 수박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다시 파도 쪽으로 달려간다.


아이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니,

반대쪽엔 커다란 타프가 멋지게 쳐져 있었다.


“옆집 아저씨는 뚝딱뚝딱 타프를 잘 치시네.”

“나도 잘 쳐!”

“아니, 당신이 못 친다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서 타프 치기 저번에 쉽지 않다고 했던 거 같아서.”


우리들 사이의 잠깐의 침묵은 파도소리가 메워준다.

남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는 책장을 넘긴다.


나는 옆 타프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원터치 텐트 안 사고, 저렇게 타프 뒤쪽을 내려서 치면

텐트처럼 쓸 수도 있겠네.”

“그건 그냥… 뒤쪽 폴대가 내려앉은 거야.”

“아~ 그래?”

“신기한 발상이네.

내려앉은 걸 보고 텐트라고 하다니.”


남편은 이런 내가 애 같고 웃긴다.

나는 남편이 애 같고 웃긴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웃긴 부부다.


“엄마, 아빠 둘이 화해해!”

“갑자기? 싸운 거 아니야~ 대화한 거야.”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이들 눈엔, 우린 철없는 부모인가 보다.

피식, 그래도 괜찮다.


오늘도 잘 놀고, 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