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와 구슬, 그 시절의 사랑
아버지는 말이 적은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의 손끝에는 늘 이야기가 있었다.
삶의 무게가 손바닥에 눌어붙은 분이었지만,
그 손으로 작은 기쁨을 만들어 우리 형제의 손에 쥐여 주셨다.
어느 날은 작은 종잇조각을 모아 딱지를 만들어 주셨다.
색이 바랜 달력 지를 네모로 잘라 손끝으로 정성스레 접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어린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마디 말없이, 손끝으로만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그분이 종이를 접는 동안, 방 안에는 오직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 순간만큼은 근심도, 세상의 무게도 잠시 멈춘 듯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아버지는 자치기 막대를 깎으셨다.
뒤란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오시더니, 칼로 껍질을 벗기고 모양을 다듬으셨다.
칼끝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가 부엌까지 들렸다.
나무가 깎일수록, 아버지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건 아들놈이 좋아할 걸 생각하는,
아버지들만이 지을 수 있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어느 봄날에는 바람이 좋은 날을 골라 연도 만들어 주셨다.
신문지를 십자로 붙이고, 대나무 살을 끼워 실을 매던 손길이 정교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을 함께 바라보던 그때,
아버지의 얼굴에는 말없이 흐뭇한 빛이 번졌다.
그건 세상의 어떤 말보다 따뜻한 미소였다.
내가 어렸을 때, 장난감 하나도 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주셨다.
비록 투박하고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 안에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깊은 정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얼마나 값진 마음이었는지를.
이제와 돌아보면, 아버지는 늘 제 방식으로 사랑을 주셨다.
말로 표현하는 대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주시고,
아들의 웃음소리를 보상으로 삼으셨던 분이었다.
그 침묵이, 그 손의 온기가
세월이 지나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이유다.
가끔 문득 생각한다.
그 시절 아버지가 들고 오시던 작은 헝겊주머니가 지금 내 손에 있다면,
그 안의 구슬보다 더 반짝이는 건
그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장 단순한 것들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깨닫는다.
사랑은 꼭 크고 화려해야 하는 게 아니다.
딱지 한 장, 연 한 장, 구슬 한 봉지 속에도
한 세대의 아버지들이 남긴 진심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