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하여(3)

봄날의 사진 한 장

by 황희종

내게는 아버지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젊은 날의 얼굴도, 나이 든 모습도 남지 않았다.
그저 기억 속에 남은 조각들이 전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기억들은 언제나 따스한 빛으로 물들어 있다.

봄이 오면 아버지는 마당 앞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살피셨다.
겨우내 얼어붙은 가지 끝에 새순이 돋아나면
“이제 봄이구나”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 장 남지 않았는데도,
그때의 햇살과 아버지의 눈빛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선명하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가난한 집에서 사진은 사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하루는 언제나 한 장의 사진처럼 단정했다.

흙먼지 묻은 저고리를 털고 마루에 앉아

차분히 신발을 벗던 모습,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에서 저에게 글을 가르치시던 모습 —
그 모든 장면이 내 인생의 필름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어쩌면 사진이 없기에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빛바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그 마음이 닿았던 순간은
늘 같은 온도로 되살아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지금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 마음속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새 그분의 나이를 닮아가고,
손등의 굳은살과 걸음걸이마저 닮아 있다.
그것이 세월이 남겨준 보이지 않는 초상화다.

봄이 오면 나는 여전히 감나무와 대추나무 가지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마다 나는 느낀다.
“아, 이게 아버지의 사진이구나.”
내 안에 살아 있는 그분의 모습,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봄날의 사진 한 장이다.


“남은 사진은 없지만,
그분의 모습은 내 삶의 모든 문장 속에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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