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권위의 시대에서 대화의
시대로

아버지 상의 변모

by 황희종

내가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권위의 상징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표정은 늘 단단했다.

식탁에 앉아 계시면 공기가 조금은 달라졌다.

어머니도, 우리 형제도 말조심을 했고,

그분의 한마디는 늘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그 시대의 아버지였다.

‘가장의 위엄’이 곧 가족을 지탱하는 힘이라 믿었던 시절,

아버지는 말 대신 책임으로, 표정 대신 묵묵한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 권위는 사실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가난한 현실과 무거운 책임 앞에서,

감정을 표현할 여유가 없었던 세대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

그 믿음이 아버지를 버티게 했고, 동시에 가족과의 거리를 만들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희생을 미덕으로 삼은 마지막 세대였다.

세월이 흘러 나 역시 아버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분처럼 되고 싶었다.

가정을 지키는 건 가장의 권위라고 믿었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존경은 권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대화로 쌓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눈빛에서 배웠다.

언젠가 큰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한테 화났을 땐 그냥 이야기해 줘요.

말 안 하면 더 무서워요.”

그 말이 가슴을 쳤다.


내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아버지의 침묵이

이제는 오히려 벽이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요즘의 아버지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화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는다.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이에게서 세상의 변화를 배우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버지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 가족의 한 사람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분이 지키려 했던 권위의 자리가 사실은

가족을 향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

다만 그 방식이 시대를 앞서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그 사랑을 말로, 행동으로,

그리고 함께 웃는 시간으로 표현하려 한다.

권위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아버지의 자리는 더 이상 높거나 멀지 않다.

가족 곁에서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하며

삶의 무게를 나누는 그 자리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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