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군 의료개혁, 위기 속에서 꽃 피운 진심과 변화

“결과는 절반이어도, 시도는 온전했다”

by 황희종

2007년 1월, 저는 국방대학교 안보과정을 마치고 국장으로서 첫 보직인 국방부 보건복지관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젊은 병사의 ‘위암 오진 사망 사건’이 언론을 뒤흔들며 군 의료체계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국회, 시민단체의 압박은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저는 그 위기를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오래 묵은 군 의료체계의 병폐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군 의료개혁추진위원회’를 바로 재구성했습니다. 군 내부 중심이던 위원회를 외부 민간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는 독립적 기구로 전환하고, 개혁의 기준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탁상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전국 군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노후한 장비, 과도한 업무로 지친 군의관들, 무엇보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쌓여 있던 깊은 불신의 골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군의관들과 마주 앉아 숱한 간담회를 열고, 의료진의 고충을 듣고, 하나씩 해결의 맥을 짚어갔습니다. 개혁은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저는 느리더라도 반드시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위기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면으로 끌어안아야만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습니다.

군 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과 장비의 절대적 부족이었습니다. 대부분이 3년 복무 후 떠나는 단기 군의관이었고, 숙련된 전문의가 부족했습니다. 장비는 뒤처져 있었고, 응급 대응 시스템은 위험할 만큼 취약했습니다.

저는 미국 월트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 모델을 참고해 ‘국군중앙의료원’을 세우고, 군이 환자를 완치될 때까지 책임지는 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장기 군의관 유치, 민간 의료진 영입(서울대 P 교수님의 큰 도움), 우수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까지—군 의료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로드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환자를 군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구상은 결국 막대한 예산 부담이라는 현실 앞에서 좌초되었습니다. 대안으로 채택된 것은
“환자가 원하면 민간병원으로 전원(轉院)하고 국방부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형태였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저는 군 병원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개혁은 제 마음속에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화상 환자 부모들이 국회 앞 시위를 예고했다는 급한 민원을 접했습니다. 의무사령부가 규정만을 앞세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저는 직접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병원으로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튿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저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신 화상으로 붕대에 감겨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젊은 청년을 본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제 가슴을 깊이 뒤흔들었습니다.

다른 병실의 보호자들 역시 군의 무관심에 대한 절망을 토해냈고,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장관님께 보고하자, 장관님은 직접 손 편지로 위로를 전하셨고, 격려금도 전달되었습니다. 그 진심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깊이 어루만졌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규정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
행정은 차가운 절차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후 저의 지시로 부서 직원들은 여러 번 병원을 찾아가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환자의 회복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보호자 한 분이 ‘칭찬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진심이 담긴 감사 글이었고, 저는 읽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가끔 문득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떠오릅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함께 흘린 눈물과 장관님의 손 편지, 직원들의 방문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경험은 제게 마지막으로 이런 진실을 남겼습니다.
정성을 다한 행정은 기록보다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진정한 개혁은 결국 ‘사람을 향한 진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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