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을 배우며 사람을 얻다
2006년, 국장으로 진급한 저는 국방대학교 안보과정에 입교했습니다.
이곳은 정부 부처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공기업 임원, 지방자치단체 고위공무원, 대령급 이상 군인, 외국군 장교까지 — 각기 다른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200여 명이 모인 집합체였습니다.
공직 생활의 긴 숨결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국내외 안보 환경과 국방 정책 전반을 깊이 배우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캠퍼스를 오가며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나누고, 함께 연구하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은 단지 정책과 전략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행정가로서의 시야를 다시 세우고, 국방과 행정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민·군 관계의 복잡성,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방대한 국방 예산의 구조를 다루는 강의들은 제 실무 경험을 이론의 틀 속에서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교수들의 열정적인 강의와 날카로운 분석은 제 안의 고정관념을 흔들었고,
그 속에서 저는 ‘감(感)’이 아닌 ‘데이터와 논리’에 근거한 판단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국방대학교에서 보낸 1년은 저를 실무와 이론을 함께 아우르는 ‘정책가’로 성장시킨 전환점이었습니다.
국방대 안보과정은 단순히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시야를 확장하고 ‘사람’의 가치를 다시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경찰, 국정원, 외교부, 기재부 등
각자의 영역에서 중심 역할을 맡고 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의 안보와 미래를 논의했습니다.
각기 다른 생각과 경험이 모여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그 현장에서 저는 실감했습니다.
“결국 정책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강의실을 벗어나서도 배움은 계속되었습니다.
현장 견학과 해외 시찰, 연구 토론 속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했고, 그 속에서 맺은 인연은 제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국정원 간부의 날카로운 분석, 경찰 간부의 위기 대응 노하우,
그리고 다른 부처 국장들의 전략적 사고는 늘 저를 자극했습니다.
‘고위직일수록 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지혜를 경청하고, 그것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깨달음이 이후 제 리더십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국방대학교에서의 1년은 단순한 안보 교육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공직의 철학을 다시 세우고, 사람 중심의 조직 운영을 구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이후 맡게 된 중책 속에서도 저는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국장, 대통령 경호실 본부장, 공군 대령은 함께 지냈던 제 인생의 소중한 친구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인연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웃고 토론하던 동기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먼저 청와대 경호실 본부장을 마치고 한국관광공사 탐방이사로 일하던 친구가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치료가 호전되어 함께 여행도 다녀왔지만, 며칠 후 그는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우리 중 가장 젊었기에 그 상실감은 더욱 깊었습니다.
그 후에도 남은 친구들과 자주 만나 서로의 건강을 다짐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80살까지는 꼭 함께하자.”
하지만 운명은 또다시 우리를 시험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국장이던 교육과학기술부 실장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그리고 퇴직 후에는 과학연구재단 이사장, 대학교부총장 등을 역임했지요.
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는데 그분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19로 병문안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절,
저는 장례식장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과 허전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이별은 제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직위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유한하기에
지금 곁에 있는 인연을 진심으로 아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국방대에서 만난 그 인연들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스승이었고,
그들의 삶과 죽음은 제게
“사람이 남긴 마음이 곧 그 사람의 진짜 유산이다”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