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국방부 보건복지관으로서 군 의료개혁과 함께 군인복지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군 조직에서 ‘복지’는 한동안 비주류 취급을 받아온 분야였습니다.
군 주거 환경, 병영 시설, 복지 체계는 시대 변화에 한참 뒤처져 있었고,
장병들의 삶의 질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군 의료개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저는 뜻밖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장관님이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군 복지 향상 계획을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전투력과 안보 현안이 주로 논의되는 자리에서
복지 분야가 발언권을 얻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순간을 ‘기회’로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지나칠 수 있었던 10분, 그 짧은 시간이
군 복지 혁신의 물꼬를 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복지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니라
국방력의 핵심 요소임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복지 향상을 위한 세부 계획을 면밀하게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장애요소는 군 복지향상을 위한 근거 법령이 없어 추진의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군 복지 혁신의 최우선 과제는
‘군인복지기본법’ 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이미 오랜 시간 반복된 실패의 역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예산 문제, 제도 설계 미흡, 군 내부의 소극적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번 좌절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왜 실패했는지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부 입법으로는 절대 통과될 수 없다.
단 하나의 길은 의원입법이다.”
당시 정부는 예산이 필요한 의원입법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존의 틀을 그대로 따르면
이 법은 또다시 장식품처럼 사라질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기처럼 여겨지던 길, 의원입법을 선택했습니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방식이었지만
그 길만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큰 산을 넘기 위해서는
뜻을 함께할 국회의원이 필요했습니다.
복지에 관심이 깊었던 K 의원을 찾아갔고,
의원님은 제 제안을 듣자마자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같이 갑시다.”
그 후로 벌어진 일들은 지금 떠올려도 경이롭습니다.
국방 상임위 질의 시간을 통해 장관에게 법안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군 내부의 경각심을 높였으며
결국 150명 이상의 의원 서명을 받아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국방부 역사에서 보기 드문 규모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산이지만,
사람과 뜻이 모이면 불가능도 가능해진다는 것을요.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도 예산 논쟁과 담당 부처 간 갈등이 이어졌지만
K 의원의 설득과 조율로 정부도 마침내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2월 21일 저녁,
군인복지기본법은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08년 3월 시행령이 제정되며 법이 시행되자
군 복지 정책은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장병 주거 시설 대폭 개선
복지 시설의 전면적인 현대화
군인 자녀 교육권 보장
국방부의 연례 복지 기본계획 수립 및 국회 보고 의무화
군 복지는 더 이상 ‘부수적’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지는 핵심 정책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법이 민간 출신 공무원이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조직 챙기기’라는 오해 없이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과정을 돌아보며 생각합니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
나는 해야만 했고… 결국 해냈다.”
군인복지기본법은
제가 공직 생활에서 남긴 가장 큰 발자취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