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국군복지단 창설이야기

장병 복지를 하나로 묶어낸 긴 여정

by 황희종

2007년 보건복지관으로 부임한 뒤, 군 의료개혁과 군인복지기본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틈틈이 각 군의 복지시설을 직접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대마다 복지 여건이 다르고, 때로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현실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부대는 안정된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어떤 곳은 여전히 시대 흐름에 미치지 못하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장병의 마음가짐과 군 조직에 대한 신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복지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한다.

각 군이 각 각 운영하는 기존 체제로는 국방부가 추구하는 공통의 복지 기준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마침 새 정부와 새 장관이 취임한 시기였고, 저는 이 타이밍을 ‘바뀔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장관님도 제 문제의식에 진심으로 공감하셨고, 국군복지단 창설은 그렇게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통합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해군과 공군의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자신들의 복지 체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각 군의 특수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 “육군 중심이 되지 않겠느냐”는 불안도 솔직한 반응이었습니다. 의견은 장관님에게까지 전달되었고,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흔들리는 듯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득을 이어갔습니다. 반대 의견을 흘려듣지 않고 충분히 경청하되, 장병 복지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위해 왜 통합이 필요한지 논리와 근거로 설명했습니다. “각 군이 쌓아온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함께 보완하자”는 방향을 꾸준히 보여드렸고, 통합 이후에는 민간 전문가가 단장을 맡아 특정 군 중심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신뢰를 쌓았고, 마침내 통합은 제도화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국군복지단 창설을 추진하는 동안 저는 PX 운영 실태도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PX는 장병들에게 작은 쉼터이자 생활의 활력소였지만, 품질과 운영 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병사들이 PX 근무로 인해 본연의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운 문제, 품질에 대한 불만, 그리고 사소한 사건사고의 부담까지…
그래서 PX를 민간 편의점처럼 운영할 수 있는지 용역을 두 차례 실시해 검토했습니다. 결론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대대급 규모라면 가격 인상 없이도 고품질 제품과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고,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제가 다른 보직으로 이동한 후, 후속 검토에서 “가격 인상 가능성”이 다시 논란이 되었고 결국 이 시도는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 자체가 장병들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저는 지금도 그 의미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8년 9월 1일, 국군복지단이 공식적으로 창설되었고, 이후 계속된 통합 작업을 거쳐 2010년 1월, 각 군의 복지체계가 완전히 하나로 모였습니다. 저는 늘 믿어왔습니다. “군의 전투력은 장병들의 사기에서 나오고, 사기는 곧 복지에서 나온다.”
이 믿음을 현실로 만든 과정이 바로 국군복지단 창설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몇 가지였습니다. 문제를 직시하는 근거와 분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함께 힘을 보태주는 우군(友軍)의 존재. 큰 변화는 결국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문득 국군복지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장병 모두가 공평하고 든든한 복지를 누리며 군 생활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면, 제가 그때 흘렸던 땀과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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