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군필자 가산점 제도를 다시 말하다

잊힌 정의를 향한 조용한 모색

by 황희종

군필자 가산점 제도는 제게 언제나 마음 한 편의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군 복무 전에, 스무 살도 되기 전 어린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자연히 군필자에게 주어지던 5% 가산점의 혜택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청년들은 군 복무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배려로 이 점수를 적용받았지요. 저는 비록 적용 대상은 아니었지만,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바친 이들에게 그 가산점은 ‘덤’이 아니라 ‘정당한 보상’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이 제도는 갑작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여성과 장애인에게 불리하다는 이유였지만, 저는 오래도록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말 제도 자체가 위헌이었을까? 아니면 5%라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뿐이었을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였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이 질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보건복지관으로 부임한 후, 저는 조용히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 지시받지도 않았고, 공식 과제도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이라 자칫하면 불필요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었기에,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꼼꼼히 자료를 모으고 다양한 의견을 살폈습니다. 묘하게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다시 꺼내야 한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70~80%가 군필자 가산점 제도 재도입에 찬성하고 있었고, 여성들 중에서도 약 70%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현실적 형평성’이 필요하다는 사회의 인식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렵게 만난 헌법재판소 재판관 한 분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5%가 너무 높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 한마디가 제 머릿속의 오랜 의문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제도가 아니라 ‘비율’ 일 수 있다는 가능성.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잊힌 정의’를 다시 현실로 끌어올릴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정권이 교체된 2008년, 사회적으로도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병역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신속히 마련했습니다. 국방위원회 심의 과정은 순탄했습니다. 한 국회의원께서 “기존 5%가 논란이었으니 2.5%로 조정하자”는 현실적인 제안을 했고, 이 안이 의결되었습니다. 법사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본회의 상정이 확정되었습니다. 모두가 이제 곧 통과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회의인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단 한 명의 의원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2.5%를 부여할 근거가 미약합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조사와 설득, 그리고 무르익어가던 국민적 공감대가 한순간에 멈춰 섰습니다.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날 회의장을 떠나 나오며 한동안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병사들 월급을 올렸으니 됐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의 월급 인상이 군 복무라는 고유한 시간의 손실, 사회 진출의 지연, 청춘의 공백을 온전히 보상할 수는 없습니다. 군 가산점 제도는 단순한 점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과 맺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의무’를 다한 이들에게 ‘정당한 배려’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공정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조용히 제 책상에서 이 과정을 돌아보았습니다. 비록 법안은 좌절되었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확신을 남겼습니다. “옳다고 믿었기에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 작은 기록이 언젠가는 다시 누군가에게, 잊힌 정의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단초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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