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헌신에 대한 국가의 약속을 지키다

군인연금을 지켜낸 싸움

by 황희종

정부가 ‘4대 연금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던 시절, 저는 보건복지관으로서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할 만큼 민감하고 무거운 과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군인연금을 일반 공무원연금과 함께 개혁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정부 논의가 본격화되던 때였습니다. 국가 재정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했지만, 논의를 들여다볼수록 “군인연금만큼은 같은 기준으로 다룰 수 없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군인의 삶은 다른 직업과 다릅니다. 정년은 짧고, 언제 어디서 임무가 주어질지 알 수 없으며, 가족과 장기간 떨어지거나, 극한 환경에서 근무해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전시·평시의 경계도 없습니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군인연금은 단순한 노후대비가 아니라, 국가가 군인과 맺은 실질적인 ‘신뢰의 계약’이었습니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 대부분이 군인연금을 별도로 운영하거나 국가 책임으로 분리해 놓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적자’라는 숫자만을 내세우며 군인연금의 본질적 가치를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이 논쟁은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군인들에게 지켜야 할 약속의 경계에 서 있는 문제였습니다.

국방부 내부에서도 연금 개혁과 관련해 논의가 깊어지던 때, 제가 참석하던 위원회 테이블에는 군인의 특수성과 헌신을 제대로 설명하고 방어해 줄 인물이 전무했습니다. 내부 보고를 준비하면서 저는 결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국방부 연금개혁위원회 위원들을 민간 전문가로 교체해야 합니다. 내부에서 아무리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대신해 줄 사람을 밖에서 모셔와야 합니다.”

차관님은 예비역과 현역의 반발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군인연금을 지켜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직을 걸겠다는 각오를 밝히자, 마침내 교체는 단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저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새로운 위원들을 데리고 직접 현장을 찾아다녔습니다. 최전방의 GOP, 해군 함정과 외딴섬 기지, 숨막히는 잠수함 내부, 전투기 정비 현장까지. 군인 아파트와 가족관사에도 직접 들어갔습니다.

어떤 위원은 함정 체험 중 멀미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위원은 공군기지에서 굉음을 견디지 못하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군인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뒤, 회의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한 위원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군인연금은… 공무원연금과 다르게 봐야 합니다.”

그 짧은 문장이 저에게는 천둥같이 들렸습니다.
그동안의 고독했던 싸움이 의미를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군인연금은 ‘직역의 특수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4대 연금 개혁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건 단순히 하나의 제도를 지켜낸 일이 아니라,
국가가 군인을 ‘비용’이 아닌 ‘헌신’으로 바라본다는 분명한 신뢰의 사인(sign) 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제 공직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가장 뜨거웠던 싸움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습니다.
군인의 희생과 가치를 지켜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공직자로서 제가 지켜야 했던 마지막 선(線)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묻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그 약속이, 앞으로도 대한민국 군인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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