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국방재정관리단 창설의 주춧돌을 놓다

공공성과 효율성 사이의 줄타기

by 황희종

2009년 1월, 저는 보건복지관에서 계획예산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 보직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군 재정 업무의 오래된 관행이었습니다. 각 군에 흩어져 있는 경리단 조직은 여전히 ‘주판과 수기’ 시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업무는 중복되고, 투명성은 늘 의심을 받았습니다. 일부 부대에서는 민간 업체와의 유착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고, 제도는 곳곳이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국방재정관리단 창설은 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된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의 반발과 인력 감축 우려, 각 군의 자존심이 얽히면서 전임자들 모두가 뜻을 접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아무도 넘지 못했던 벽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이 비효율의 사슬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을 바꾸어야 군이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오래전 혁신기획관 시절 느꼈던 확신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현역 장병은 전투 부대로 보내야 한다. 비전투 분야는 전문 인력이 맡아야 한다.” 재정과 회계는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었고, 따라서 민간 전문가 중심의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창설될 재정관리단을 ‘민간군무원 중심’으로 설계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는 구조로 틀을 잡았습니다. 병력을 행정업무에서 벗어나게 하고, 필요한 곳으로 재배치하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국방재정관리단은 단순한 각군의 경리단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건비와 연금, 방위사업청과 조달청에서 하지 않는 소규모 물품 구매, 공사·용역 계약, 국가채권 관리, 재정정보시스템 관리 등 군 재정의 핵심 기능을 한곳에서 담당하도록 설계된 ‘국방 재정의 심장’이었습니다. 투명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길이자, 장병들이 행정 부담에서 벗어나 전투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재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길이 늘 그렇듯,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습니다. 각 군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경리단 조직의 해체를 곧 정체성의 붕괴로 받아들였고, 일부 부대에서는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경리 조직의 오랜 자존심과 각자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통합’이라는 단어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수많은 회의에서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새기며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장기적으로 군이 재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할 것이고, 조직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믿음을 흔들림 없이 전했습니다. 다행히 몇몇 소신 있는 동료들이 뜻을 함께하며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2010년, 저는 방위사업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후임자들이 바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의사결정과 기본 설계는 모두 완료해 두었습니다. 길은 이미 열어두었다고 믿었기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2월 1일, 국방재정관리단이 마침내 공식 출범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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