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민간자본을 활용해 길을 열다

“예산이 막히면, 길을 새로 만들면 된다”

by 황희종

2009년, 제가 계획예산관으로 보직된 직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하나였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군 시설과 병영환경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

늘 부족한 예산, 해마다 미뤄지는 관사 보수, 낡아가는 병영 시설….
장병들의 삶의 질은 개선이 아니라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현실 앞에서 저는 가슴속 깊이 작은 물음을 품었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실무자들과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며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국방의 예산 한계를 넘어설 방법은 무엇일까?’
서랍 속까지 뒤져가며, 적은 가능성 하나라도 찾으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방 분야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방식,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새로운 길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조직 내에 ‘민간투자과’를 신설하는 아이디어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 위험 분담, 운영 방식, 장기 재정 영향 등
하나하나를 밤늦게까지 검토했습니다.


그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이 바로 BTL(Build-Transfer-Lease)이었습니다.

민간이 먼저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건설하고,
국가는 장기간 임대료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
당시 국방 분야에서는 사실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물 한 동을 짓는 문제가 아니라,
장병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라고.


기획재정부와 군사시설기획관실과 협의를 거친 뒤 장관님께 보고 드렸고,
다행히 새로운 시도를 향한 장관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마련한 정책 방향과 틀은 후임자들이 이어받아 실제 사업으로 완성되었고,
오늘날 BTL은 군 관사·생활관 현대화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득, 현대식 관사나 생활관을 지나칠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곤 합니다.

“그때 매일같이 이어지던 그 밤의 토론과 고민이…
결국 여기까지 와 있었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제 공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예산의 벽에 부딪혀도 길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답을 찾으려 했던 작은 용기와 믿음,
그 시간이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씨앗이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재정 개혁의 여정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9년 여름, 한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차관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국장들과 실무자들 앞에서, 차관은 방위사업청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방위력개선 예산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예산은 방위사업청이 작성하고 기재부에 이미 제출했습니다. 국방부가 모르는 예산을 어떻게 줄입니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일단 줄이시오. 복안은 내가 가지고 있어요.”

두 시간 넘게 이어진 논쟁 끝에, 차관은 그 삭감안을 종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지침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장관 공관으로 가서 국방예산 기재부 심의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월요일, 차관은 저를 포함한 국장들을 청와대 보고 자리에 배석시켰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참석한 자리에서, 우리는 사실상 ‘묵묵한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
더 당혹스러웠던 건 다음이었습니다.

“그 삭감안을 당신이 종합했다면서?”
장관의 날카로운 질책이 이어졌습니다.
차관 회의 이후 보고를 위해 공관에 갔다는 설명도, 그 지시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해명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보고서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미 ‘보고 누락’이라는 오해가 깊이 자리 잡은 뒤였습니다.


며칠 뒤에는 장관 명의로 청와대와 기재부에 보내는 편지가 언론에 유출되며 국방부는 큰 파장에 휩싸였습니다.
차관은 제가 그 편지를 작성했다고 오해했고, 저는 제 설명을 믿어주지 않는 그의 반응 속에서 괴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갈등의 본질은 단순히 예산 문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장관과 차관 사이에 이미 깊은 균열이 생겨 있었고, 저는 그 틈에 낀 채 양쪽의 오해를 동시에 받는 어려운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묵직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아도,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리더십의 중심에 ‘소통’이 빠지면 조직은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참모의 자리가 때로는 자신의 신념과 조직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균형을 요구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개혁의 성취와 함께 억울함도, 자부심도 함께 떠오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것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성과보다도, 그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진정성에 있다.”

그 믿음을 다시 다지며, 저는 그리움 속에 머문 그 시간들을 하나의 배움으로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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