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방위사업청으로 전출 가다

효율성과 신뢰의 기반을 다지다

by 황희종

2009년 2월, 저는 국방부 계획예산관에서 방위사업청 획득기획국장으로 보직을 옮겼습니다.

방위사업청은 2006년 무기체계 획득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역사적 목표로 출범했지만,

창설 4년 차에 접어든 그 시점은 여러 시행착오가 누적되어 전면적인 제도 점검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저는 군수국에서 조달 정책을 다뤄본 경험과 서기관 시절 양산 단계의 무기체계를 직접 챙겨 온 이력을 바탕으로, 이 복잡한 제도적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새로운 자리로 들어섰습니다.


획득기획국장은 방위사업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자리였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법령과 규정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불필요하게 복잡해진 절차를 정비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제도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군, 각 부처, 민간 업체와의 협조 체계가 완벽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규정과 절차가 겹겹이 쌓이며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모습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도적 균형을 다시 맞추고, 방위사업청이 국방 전력 건설의 중심 기관으로 확고히 서도록 기반을 다지는 데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연구개발 분야의 역할 정립은 가장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저는 당시 우리 민간 방산기업의 기술 역량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고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무기체계 개발까지도 모든 것을 국방과학연구소가 독점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반형 무기체계 개발 역할은 과감히 민간으로 이관하고,

국방과학연구소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 비닉 기술 개발에 집중하도록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연구소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민간은 아직 부족하다”, “국방 연구개발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면서도 객관적 검증을 위해 민간 기업 현장, 연구소 전문가, 외부 자문까지 직접 만나 확인했습니다.

결국 저는 일정 기간 동안 민간 개발 사업에 국방과학연구소가 참여하도록 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모든 역할을 민간으로 넘기는 ‘단계적 이관’이라는 현실적인 해법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정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국방 연구개발 생태계를 확장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제 협력과 민군 기술 접목을 넓히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당시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 방산 선진국은 이미 공동 기술 개발과 기술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단순 구매국을 넘어서 기술 협력의 대등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각국과 고위급 협의체를 만들고, 인공지능·무인체계 등 미래 분야의 기술 교류를 추진하며 기술 자립 기반을 단단히 마련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민간 기술을 국방 분야에 적용하고, 국방 기술을 민간 산업에 확산시키는 민군 기술 접목 정책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국방 신기술 공모전, 국방기술경진대회 같은 제도는 이러한 흐름을 촉진하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은 국방기술품질원의 전문성 강화 작업입니다.

군수품의 품질은 전력 건설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러나 당시 국방기술품질원은 유사 기관에 비해 낮은 보수 체계로 인해 전문 인력의 이탈 우려가 컸습니다. 저는 처우 개선을 통해 조직의 역량을 지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실제 예산 반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부처와 협의를 거듭했습니다. 품질 관리와 기술 기획을 담당하는 기관의 전문성은 곧 국방력의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절충교역 제도 역시 다시 손봐야 할 분야였습니다.

절충교역은 단순한 보상 거래가 아니라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도구입니다. 과거에는 일부 저부가가치 중심의 보상에 머문 경우도 있었지만, 저는 기술 이전, 공동 개발, 핵심 부품 국내 생산 등 고부가가치 중심 구조로 과감히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방위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획득기획국장으로 있던 동안, 저는 합참 무기체계 소요 심의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했습니다. 각 군의 소요를 검토하며 저는 늘 현실적인 기술 수준과 예산 여건을 감안한 ‘단계적 개발’을 강조했습니다. 국방 정책은 이상적 목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눈앞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균형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 제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겉으로 보기에 큰 변화 없이 일상이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저는 곳곳에서 조용한 균열을 발견했습니다. 제도의 경직성, 부처 간 시각 차이,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 저는 그 균열이 열어준 작은 틈을 통해, 과하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을 가진 여러 변화를 조용히 시도했습니다. 그 변화들은 당장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국방 획득 제도의 신뢰를 쌓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심어 두었던 작은 씨앗들은 지금도 조용히 자라며, 그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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