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객원연구원이라는 이름!

성찰의 시간을 갖다

by 황희종

2012년 8월, 방위사업청 획득기획국장이라는 역할을 마치며 저는 자연스럽게 국방부로 복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내부 정비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져 더는 국방부에서 국장을 파견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정작 국방부는 내부 승진을 이유로 저를 반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는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의 ‘객원연구원’이라는 다소 낯선 직함을 달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제 공직 생활에서 처음 찾아온 ‘멈춤’의 시간이었습니다.

객원연구원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장해 주는 단어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했지만, 제가 마주한 현실은 TV 한 대가 놓인 텅 빈 사무실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책을 펼치고, 때로는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니던 일상과 비교하면 그곳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고요했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함도, 허탈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고요 속에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왔던 공직의 시간들, 업무와 책임에 묻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의 흔적들….

텅 빈 책상 앞에서 저는 오랜만에 제 마음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예기치 못한 선물이었습니다.

고독한 하루들이 이어졌지만 그 속에도 따뜻한 순간들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가끔 연구소장님의 배려로 석사과정 장교들에게 특강을 하곤 했습니다.

강단 앞에 서면 오랜만에 ‘국방행정의 전문가’로서의 제 자리가 다시 느껴졌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하루가 있습니다.

혁신과장 시절 함께했던 동료들이 도시락을 손수 싸 들고 제 사무실을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은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 찼고, 그 하루는 고독했던 시간을 단번에 녹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저를 잊지 않았고,

제 곁에는 여전히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그 따뜻한 연대감은 마치 유배지에서 만난 동지들과도 같았습니다.

그날 느꼈던 고마움은 지금도 잔잔하게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연구원의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실은 제 삶을 다시 정돈하고,

앞으로의 길을 준비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억울한 생각을 했던 순간도 있었고 마음이 무거웠던 날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더 크게 남습니다.
잠시 멈추어 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홀로 있어야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은 제 인생에서 고요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긴 한 페이지였습니다.

돌아보면 그 고독은 성찰로 이어졌고, 그 성찰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객원연구원’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저는 아무도 모르게 한층 더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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