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답이 있다: 발로 뛰며 갈등을 해결하다
2013년 4월 10일, 저는 방위사업청과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3년 2개월 만에 다시 국방부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맡은 자리는 ‘군사시설기획관’이었습니다.
전국 군부대의 시설과 방대한 국방부 부동산을 총괄하고, 부대의 통합과 이전, 재배치까지 조정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병영생활관, 가족 숙소, 환경 민원까지 군의 일상과 직결된 모든 인프라가 제 업무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막막함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군 시설 분야에서 직접 일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고, 사용하는 용어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낯설다는 것은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뜻이고, 막막하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먼저 전임자들이 남겨 놓은 계획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이미 시작된 일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책상보다 현장을 더 많이 찾겠다고.
부대 내 도로포장, 노후 생활관 보수, 가족 숙소 확충, 환경 민원….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듣기 시작하자,
문서 위의 숫자와 현장의 삶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공사 하나가 장병들의 하루를 바꾸고, 그것이 쌓여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비로소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갈등은 늘 현장에 있었습니다. 대구, 수원, 광주 군 공항 이전 문제가 전국적인 사회 이슈로 떠오르던 시기,
저는 군 공항 이전 추진단을 만들며 이 복잡한 문제에 정면으로 나섰습니다.
행정과 군,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문제였기에, 형식적인 협의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부딪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포항공항 문제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활주로 착륙 지점 앞의 얕은 산 때문에 안전 문제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주민 반대와 작전 차질, 항공사 취항 취소까지 겹친 난제였습니다.
여러 대안이 막히던 끝에 저는 그 산이 국유재산이라는 점에 주목했고, 산을 절개해 나온 흙으로 활주로를 높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모두가 놀라던 그 방식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지금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해파랑길을 걷다 그 공항을 지나칠 때면, 괜히 발걸음이 잠시 멈춰지곤 합니다.
전주 헬기대대 이전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리한 계획으로 수년간 표류하던 사안을 현장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결국 임실 이전을 접고 전주 외곽으로 방향을 바꾸게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오해도 많았지만, 현장을 보지 않았다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서울 마곡동에 있던 군부대 역시 도시개발의 ‘알 박기’로 오해받던 곳이었습니다.
이전 비용과 개발 비용을 둘러싼 팽팽한 대립 속에서 저는 국방부와 서울시 사이를 오가며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갔고, 결국 민군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지금 깔끔하게 정비된 마곡지구를 지날 때마다, 그 긴 협상 과정이 떠오르곤 합니다.
재직 중 비리 사건 하나는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시설 공사와 관련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현역 장교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고,
저는 이 일을 계기로 제도 자체를 다시 뜯어고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가위원을 무작위로 선정하고, 평가 당일까지 누구도 명단을 알 수 없도록 하는 방식, 민간 전문가 참여 확대…. 번거롭고 불편한 절차였지만, 그 불편함이 결국 신뢰를 만든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단 하나였습니다.
답은 항상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는 것.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보고서에는 절반의 진실만 담겨 있고,
먼지와 소음, 민원과 갈등이 뒤섞인 현장에는 언제나 진짜 질문과 진짜 해답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저는 그 시절 다시 한번 깊이 배웠습니다.
돌아보면, ‘군사시설기획관’은 제게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자리였습니다.
수없이 현장을 밟으며 저는 또 한 번, 공직자로서의 제 자신을 단단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