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멀어질수록 더 또렷해진 얼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늘 같았다.
안부를 묻고, 밥은 잘 먹는지 확인하고,
몸 상하지 말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은 점점 기억 속에만 남았다.
자주 보지 못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얼굴은 서서히
‘만나는 얼굴’이 아니라
‘떠올리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 속으로만 남은 그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희미해지기는커녕,
삶의 선택 앞에 설 때마다
더 분명하게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 집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말해도
끝내 그러지 않았다.
“내가 며느리에게 해준 게 없는데
어떻게 얼굴을 보겠느냐.”
그 말 속에는
서운함도, 고집도 없었다.
대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미안함과 예의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의 삶에 스며드는 대신
한 발 물러서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대신 명절이나 휴가 때 내려가면
어머니는 오래도록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손주들의 손에 쥐여 주었다.
큰돈도 아니었고
특별한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 봉투에는
어머니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 들어 있었다.
아들보다 손주를 먼저 떠올리고,
자기 자리보다
다음 세대의 자리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
그래서 어머니는
내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가장 깊은 곳에서
늘 나를 향해 있었다.
멀어질수록
어머니의 얼굴은 더 선명해졌다.
도움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버텨야 할 순간마다
그 얼굴이 앞에 서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그제야 나는 조금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끝내 오지 않았던 이유를,
끝내 말하지 않았던 마음을.
어머니는
멀어짐으로써
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