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뒤의 공기는 늘 다르게 느껴진다.
어제까지 익숙하던 풍경이
오늘은 한 박자 느려 보이고,
사람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진다.
공직의 자리에서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공직의 결정은 늘 속도를 요구받는다.
보고는 빨라야 하고,
결정은 지체되면 안 되며,
성과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결정이
빠를수록 옳은 것은 아니다.
특히 공공의 선택은
속도보다 숙성이 필요할 때가 많다.
나는 공직에 있으면서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 말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고,
실제로 신속함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서둘러 내린 결정 중 일부는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다림은 무능이 아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도 아니다.
공적 책임 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결정을 미루는 대신
결정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를 한다.
자료를 더 보고,
다른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결과를 함께 감당해야 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시간은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책임이 쌓이는 순간이다.
공직에서 기다림이 책임이 되는 순간은 분명하다.
그 기다림이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기 위해,
설명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피하기 위해 선택될 때다.
그때의 기다림은
결정을 늦추는 행위가 아니라
결정을 지키는 태도에 가깝다.
요즘 우리는
빠른 판단을 유능함으로,
즉각적인 결정을 리더십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에서
진짜 유능함은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이고,
진짜 리더십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비가 그친 뒤 찾아오는 추위처럼,
결정 뒤에는 늘
감당해야 할 시간이 따라온다.
그 시간을 미리 떠올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시간을 혼자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
그가 바로
공적 책임 의식을 지닌 공직자라고 나는 믿는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최근,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지 모를 순간을
떠올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기다림은 회피였습니까,
아니면 책임이었습니까?